매일신문

수암칼럼-누구는 입이 없어 할말 못하나

지금 우리 주변에서 하고 싶은말 하고 싶은대로 다하고 하고 싶은일 맘내키는대로 다하고 사는사람이 몇이나 될까. 근로자·기업인·가장(家長)·공직자등 그 어떤계층을 돌아봐도 목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할말'꾹꾹 눌려참고 '확걷어치워버리고 싶은'충동을 참고 사는 사람들뿐이다.부실재벌의 부도 파편을 맞거나 부실 금융권의 유탄에 억울하게 희생돼 쓰러진 기업인과 일터잃은 근로자들이야 말할것도 없고 구명보트에 살아남듯 간신히 정리해고에서 살아 남아있는 사람들도 절반이상 짤려 나간 쥐꼬리 저임금에 1인 3역의 격무를 떠맡고도 그저 꾹꾹 할말 참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군데, 정치권에서 만은 어쩐일인지 IMF 와중에도 하고 싶은 말 다하고 하고 싶은일 다해가며 살고있다. 지금 나라 사정이 어떤 판국인데 저러나 싶을만치 한가한 일거리들을 놓고서로 할말하느라 싸우거나 당장 급해보이지도 않은 일을 지금 꼭 해야한다며 하고 싶은대로 다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새 대통령의 취임식이 내일모레고 일주일후엔 외환재위기론과 삼월대란설이 떠도는 상황인데도 여·야와 대통령당선자 주변 정치권은 총리인준 다툼과 DJ비자금 진상규명, 거기다 25년이 지난 DJ 납치사건 조사라는 난데없는 일거리에 매달리고 있다. 국민들 가슴이야 속에서 석탄백탄 타든말든 자기들은 따질말, 하고 싶은일 다해야겠다는 투다.

JP총리 인준 문제부터 과연 꼭 해야할 싸움거리인지 냉정히 짚어보자. 야당으로서는 대선 패배의핵심요소의 하나였던 자민련과 JP의 김대중 연합지원이 이가 갈리도록 한이 맺힌판에 그 JP가 총리까지 되는 꼴을 눈뜨고 못볼만한 감정이 있을 수는 있다. 또한 정경유착의 표본인 구시대 정치인이고 나이가 많고 경제전문가가 아니니까 총리가 돼서 안된다는 할말도 할수있다. 1천만표라는반DJ표를 생각해야 되지 않느냐는 논리도 그럴듯하다.

그러나 정치권에 정경유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이 얼마나 있으며 지금까지 정계에 경제전문가가 없어서 이꼴인지 또 1000만표 보다 40만표 더 많은 유권자가 JP총리기용을 대선때 이미 전제하고 승인 해준게 아니냐는 반론도 귀담아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의 주장이 앞뒤 맞지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설사 그쪽 논리가 여당의 반론보다 더 합당하다하더라도 이미 세상흐름의대세와 긴박한 나라처지는 웬만한 할말도 입다물고 참아야 옳은 때라는 얘기다.김당선자측도 그렇다. 비자금조사, 그게 과연 지금 이 상황에서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끄집어 내서 밝혀야 할만큼 급박한 사안인지를 판단해야한다. 그런 사실이 없었다면 그대로 묻어둬도당당하고 명예로운 것이요, 사실이 있었다면 이미 잊혀져 가고 있는 일, 그대로 덮어두는것이IMF상황에서 새대통령의 이미지와 국가 신뢰도 보호에도 도움이 된다. 자신의 결백도 스스로 밝혀 내 보이면 그 결백이 오히려 퇴색되는것이 세상이치다.

납치사건 조사도 마찬가지다. 25년전 그것도 3개 정권이 지나간 옛이야기를 다시 재론하여 자신의정치투쟁사의 영광된 상처를 부각시키지 않더라도 이미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KCIA의 공작이라는얘기쯤 다들 알고 있다.

그것 또한 사실 규명이 필요하다면 이 국난을 넘긴뒤 한국은행 금고에 달러를 두둑히 쌓아둔 따뜻한 어느 봄날 쯤 밝혀도 결코 늦지 않은 것이다. 왜들 무엇에 쫓기듯 화급하게 자신들의 주장과할말을 하고 싶은대고 다하려고 서두르는가. 국민들은 억울한 할말도 못하고 참고사는 이국난의시기에 말이다.

정치권력은 때로 모든 것을 해결해보이고 힘을 나타내 보이고 싶도록 유혹하게 마련이다. 그러나지금은 누가 뭐래도 곁눈 팔지않고 대도로만 나가야 할 때다. 작은 골목길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힘부릴때가 아니다. 따지고 밝히고 내세우려하지만 말고 서로서로 좀 참고 살아보자 . 지금은IMF탈출이 더 급하다.

-김정길(비상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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