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라스베이거스는 풍요롭다.사막위에 서있는 도시인 라스베이거스가 풍요롭다는 표현은 일견어울리지 않는다.하지만 라스베이거스에는 없는게 없다.술, 여자, 도박 등 즐기기 위한 것은 모두 있다.

사막의 도시에 어울리지 않게 철도와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방문객들에게아무런 불편이 없다.'남녀노소 할것없이 모든이들이 와서 함께 즐길수 있는곳'이라고 표방하듯 그저 와서 즐기면 되는 도시다.라스베이거스가 스페인어로 '초원'이라는 의미를 지닌것도 이채롭다.이곳에 개인전용 골프장이 30여개소나 들어서있는것도 놀랍다.로스앤젤레스의 시나리오 작가인 벤(니컬러스 케이지)은 회사에서 받은 전별금을 들고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 24시간 입에서 술을 떼어놓지 않는 벤은 술때문에 가족과 직장과 친구를 모두 잃은 폐인. 자신의 소유물을 몽땅 불태운뒤 옷가방 하나만 차(고급 BMW나 이마저도 나중에 팔아 술마시는데 쓴다)에 싣고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벤은 싸구려 모텔에 짐을푼뒤 "나 술마시다 죽으려고 이곳에 왔수다"라고 천명한다.

벤은 라스베이거스의 길바닥에서 창녀인 세라(엘리자베스 슈이)를 만나게 되고 두 주인공은춥고 고독하고 슬픈 서로의 운명을 동정이라도 하듯 덩굴처럼 서로를 파고들며 엉킨다. 두주인공은 알코올 중독자요 창녀라는 사실을 부인하지도 고치려고 하지도 말자는 약속하에세라의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고 세라는 몸을 팔면서도 서로는 천생배필처럼 행복하다. 그러나 벤은 술 마시다 죽기로 작정한 몸이어서 둘의 행복은 짧을수밖에 없다. 알코올중독증이 극도로 악화된 벤이 더이상 거동할수 없게된 상태에서 막을 내리게 되는 이 영화의 끝부분에서 세라는 "나는 그를 필요로 했으며 진실로 그를 사랑했다"고 독백한다.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가 이곳에서 탄생한것은 우연이 아니다.이 영화에는 환락 그자체인 라스베이거스의 상징들이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벤과 세라가 만난 라스베이거스 스트리트(거리)는 파라다이스 로드, 프레몬트 스트리트와 함께 도심의 주요 거리다.밤이되면 이들 거리의 양옆에 서있는 40~50층짜리 호화 호텔의 카지노 등 각종 네온사인 불빛으로 도심은 불야성으로 변한다.밤에도 플래시없이 사진을 찍을수 있을정도로 한밤중의 밝기가 세계 제일이라고 현지 광고잡지들은 자랑한다.

라스베이거스는 밤이 가장 '환한곳'인데도 실상은 가장 음침한 곳인것은 영화'라스베이거스'와 비슷하다.라스베이거스의 현란한 분위기속에 가장 화려한 사랑을 나눌만 하지만 영화속의 두 남녀는 그렇지 못하다.두 주인공이 서로에게서 영혼의 반려자를 발견, 시한적이고도 절망적인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오색찬란한 도시의 배경과 대조를 이루며 잔인하게 부각된다. 라스베이거스에는 영화에서처럼 사방이 술과 여자와 도박장이다.

거리곳곳에는 밤의 '직업여성'들을 소개하는 잡지나 안내문들이 바람에 나뒹굴고 이따금 직업여성의 명함을 나눠주는 소년들도 눈에 띈다.직업여성들에 대한 선전은 대낮에도 활개를친다.요염한 직업여성의 모습이 실린 광고등을 차량지붕에 부착한 택시들이 시내를 누비며남성들을 유혹한다.

이 많은 여성들중에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고백하며 알코올 중독자의 반려자이기를 거부하지 않았던 영화속의 세라와 같은 여성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러한 상념도 잠시일뿐 이 도시를 찾은 수많은 관광인파에 휩쓸려버린다.

라스베이거스는 역시 도박의 도시다.모든 카지노가 24시간 영업을 하며 가벼운 오락에서본격 도박까지 모든 종류를 갖추고 있다.이렇다할 자원이 없는 사막도시에 돈을 끌어보자는 의도에서 1931년 도박을 공인했다고 한다.

도박장들은 밤낮없이 초만원이다.슬롯 머신에서 어쩌다 쏟아지는 동전소리에 취해 해가 지고 밤이 새는줄 모른다.도박장에서 가산을 탕진하는 한국인들도 적지 않다.카지노측으로부터 '마크 머니'를 빌려 도박자금으로 사용하고 한국에서 우리돈으로 되갚는 '환치기'수법을 쓰다 도박금지법이 아닌 외환관리법에 걸려드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영화의 주무대가 된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을 따라 세워진 고급호텔의 각종 시설은 가히 환상적이다.이 거리에서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MGM 그랜드 호텔은 객실만 5천여개. 밤이면 부모를 따라온 어린이를 위해 야외공원에서 대형 이벤트까지 개최한다. '서커스 서커스'는 호텔이름대로 서커스 쇼가 유명하며 어린이와 함께 가족단위로 즐길수 있는 각종 게임을 선보이고 있다.

환락중심의 호텔들이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늘어나는 점을 놓치지 않고 어린이와 관련된 이벤트를 강조하고 있는것은 놀라운 상술이다.대부분 호텔들이 화산폭발이나 해적 싸움, 유령 동산같은 볼거리를 곁들여 오락공원을 꾸미고 있다.

이래저래 라스베이거스는 초만원이다.라스베이거스는 매년 2백만명의 외국인을 포함 2천만명이 찾는 유명 관광지로 부상한지 오래다.지난 85년 55만명에 그쳤던 이 도시의 인구는현재 1백10만명을 넘어섰다.관광인파가 급증하면서 대형 호텔들도 덩달아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오는 가을 개장 예정으로 짓고 있는 벨라지오 호텔이 그 한 예다.3천개의 객실을 갖추게 되는 이호텔은 부대시설로 9에이커에 달하는 인조호수를 꾸며 분수쇼를 펼치고 호텔복도를 1억3천만달러어치의 르누아르, 모네, 피카소등의 원화로 장식할 예정이다.영화 라스베이거스는 이같은 환락을 적나라하게 그려 이 도시의 허망함을 역설적으로 고발하고 있다.이 영화의 두남녀로 열연한 니컬러스 케이지와 엘리자베스 슈이는 95년 미국영화비평가협회의 최우수 남녀배우상을, 그리고 이영화의 마이크 피기스 감독은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원작은 존 오브라이언의 반자전적 소설.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브라이언은 자신의 책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됐다는 사실을 안지 2주일후 자살했다. 이영화는 라스베이거스에 하나의 상징을 더하는 작품이 된셈이다.

〈라스베이거스(미국 네바다주)·최문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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