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래아 한글'포기 일파만파

한글과 컴퓨터의 'ㅎ.ㄴ글 포기' 선언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ㅎ.ㄴ글 사용자와PC통신인들은 분노와 허탈을 쏟아내며 전자서명, 온라인 시위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국내소프트웨어 업계, 컴퓨터 제조업계 등은 대책마련에 부산한 모습이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전개될 것인지에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미리 단정짓긴 힘들지만 네티즌과 업계 관계자들이보는 전망과 우려, 대책 등을 모아본다.

◇예상되는 시나리오

'훈민정음'으로 워드프로세서 시장의 10%대를 차지해온 삼성전자는 "제2의 ㅎ.ㄴ글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조만간MS의 독점이 불보듯 뻔하다는 주장이 주류다.

지금까지 다른 나라에 비해 20%정도 싸게 소프트웨어를 공급해온 MS가 전략을 단번에 바꿔 가격인상 내지는 횡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대학이나 관공서, 기업 등에서 사용중인 ㅎ.ㄴ글을 교체하는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필요하게 된다. ㅎ.ㄴ글에 익숙한 수백만 사용자들이 새로운 워드프로세서를 배우는데 드는 시간과 정력은 또 얼마나 막대할 것인가.

관공서, 기업 등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문서는 물론 과거 ㅎ.ㄴ글로 만들어져 보존된 문서나백업 데이터 등을 어떻게 살려내느냐도 골칫거리. ㅎ.ㄴ글을 가르쳐온 학원이나 ㅎ.ㄴ글관련 서적을 출간해온 출판사들은 손해를 감수한채 MS워드로 방향을 돌려야 할 것이다.만약 MS 한글워드가 ㅎ.ㄴ글체계인 조합완성형을 지원하지 않고 한글연구와 프로그램 개선에 소극적일 경우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진다. 한글 고문자를 지원하지 않아 각급학교의 국어나 고전 교과서를 컴퓨터로는 제작할 수 없게된다. 최첨단시대에 금속활자를 써야 하는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빠지게 된다. 한자도 ㅎ.ㄴ글에서만큼 풍부하게 지원하지 않아 손으로써넣어야하는 경우가 빈발할 것이다.

오랫동안 ㅎ.ㄴ글의 편리함에 젖어왔기 때문에 이밖에도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곳곳에서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MS가 한컴에 투자할 1천만~2천만달러나 마케팅에 쓴 자금은 앞으로의 수익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물론 '훈민정음'의 선전이나 MS의 정상적(?) 영업에 기대를 하는 이도 있다. 두고볼 일이다.

◇한컴의 입장

한컴과 MS의 구체적인 합의내용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관건은 한컴이 ㅎ.ㄴ글에 대한 저작권까지 MS에 넘겼냐는 것.

한컴의 발표이후 수많은 사용자들은 ㅎ.ㄴ글 살리기를 위해 한컴측에 공개용 프로그램화, 소스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상업용이던 ㅎ.ㄴ글을 공개용으로 전환하면 기존 사용자들의 유지는 물론 억지로 MS 소프트웨어로 교체하거나 배우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프로그램 소스를 공개할 경우 관련업체나 프로그래머들이 ㅎ.ㄴ글 기술을 발전시켜 시장우위를 유지할 수도 있다.만일 한컴이 MS에 저작권까지 양도키로 했을 경우 이같은 요구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MS가 뻔히 눈뜨고 강력한 경쟁상품을 허용할리 없기 때문이다.

한컴이 설마 저작권까지 넘겼겠느냐는 예상이 지배적이지만 구체적인 합의내용이 나오기 전까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또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다해도 한컴이 이를 공개시장에 내놓지않을 수도 있어 당분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ㅎ.ㄴ글의 운명

한컴은 기존 ㅎ.ㄴ글 사용자들을 위해 앞으로 1년간 기술지원을 계속하고 MS는 ㅎ.ㄴ글 사용자들이 MS워드로 옮겨올수 있도록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컴퓨터제조업체들과 용산, 교동시장 등지의 조립업자들은 1년뒤가 아니라 당장 올 연말부터 MS로의 이주가 불가피한 상황. 또 당분간은 기존제품이 판매되지만 워드, 오피스 등 한컴 제품들은 곧 단종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ㅎ.ㄴ글을 지켜낼수 있을까. 삼성전자가 훈민정음에 얼마만한 정열을 쏟아ㅎ.ㄴ글 사용자들을 유인하고 시장을 점유할지는 알수없다.

때문에 한컴출신 직원 12명이 지난15일부터 잇따라 갖는 모임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은 일단 오피스 등 ㅎ.ㄴ글 후속제품을 계속 개발키로 하고 기존 제품에 대한 애프터 서비스도 지속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ㅎ.ㄴ글과 연관이 있는 프로그램 업체들도 ㅎ.ㄴ글 지키기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고 있어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

그러나 당위성에는 모두가 동의하더라도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이 사업에 막대한 투자를해 가며 나설 업체는 별로 없을 것으로 보여 정부차원 혹은 범국민적 지원이 없는한 ㅎ.ㄴ글의 고사는 피할수 없다는 분석이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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