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기업 과장서 예약 실직자 된 조씨

대기업 과장 조모씨(50)는 자칭 '예약실직자'이다. 벌써 두달째 회사 근처는 가보지도 못했다. 인사대기발령자. 조씨는 4월말 대기발령 통보를 받았다.

회사에서 4월초 과장급 이상 중견간부 연수교육 지시를 내렸을때만 해도 대기발령은 꿈도 꾸지않았다. 연수 첫날 연수원 책임자는 "교육 결과에 따라 50%는 현직 복귀, 나머지는 대기발령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달 뒤 그는 대기발령자 명단에 올랐다.

항의도 해보고 아는 사람 줄을 달아서 회사 고위간부에게 자신의 처지를 호소도 해봤다. 처음에는 조금만 기다리면 곧 발령을 내 주겠다던 인사부 관계자도 며칠이 지나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실직....

올해 대학에 들어간 큰 딸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학교가 멀어 고생하는 딸에게 여름방학이 지나면 중고 경차라도 한대 사줄 마음이었는데. 처음 한달동안은 복직할 수 있다는 한가닥 기대를 품고 있었지만 두달이 훌쩍 지난 지금은 서서히 마음을 정리하고 있다. 퇴직금 정산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사직서를 내는 편이 옳다.

가족들에게는 20년 이상 장기근속자여서 한달 휴가를 얻었다고 둘러댔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아내도 뭔가 눈치를 챈 듯 했다. 요즘 들어서 조씨는 근로복지공단이나 노동청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직장을 그만두면 장사라도 해야겠는데 퇴직금으론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력은행에 가보고 재취업은 포기했다. 쉰 나이에 취업할 수 있는 곳은 전혀 없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던 풀죽은 실직자들의 표정이 조만간 닥쳐올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눈앞이 캄캄했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찾기 시작했고 가급적 가족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일부러 밤늦게 들어가고 아침이면 아이들 학교갈 때까지 방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언제까지이럴 수는 없는데.

조만간 조씨는 사직서를 제출할 생각이다. 어차피 회사에서 정리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만큼아쉽고 억울한 마음도 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20년 넘게 공장에서 일하던 자신이 장사를 할 수 있을지, 가족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려울 따름이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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