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녘 시내 한 문화센터 건물옥상. 10대 4명이 손을 바닥에 짚고 공중에서 열심히 양 발을 돌리고 있다. 속칭 '나이키'라는 브레이크 댄스에 열중이다.
"마땅히 연습할 장소가 있어야죠. 옥상이 평평하고 방해하는 사람도 없어 좋죠"김동한군(17)은 "학교에서 클럽이나 써클활동이 자유롭지 못한게 아쉽다"고 했다.두류공원안 대구문예회관 인근도로에는 매일 오후 4-5시쯤이면 남·녀 중고생들이 하나둘몰려든다. 춤을 추기 위해서다. 춤만 좋아한다면 소속학교, 학년은 상관없다. 토·일요일의경우 많게는 50명 이상이 소그룹으로 나눠 새 춤을 개발하고, 경연도 벌인다. 구경꾼들이 주변에 둘러앉아 박수를 보낼때면 더 신이 난다. '어른을 위한 문화공간'옆에 마련한 '자신들만의 조그만 문화공간'인 셈이다. 해가 기울면 집으로 발길을 돌리지만 일부는 서구 중리동감삼공원으로 향한다. 가로등이 있는 이 공원에서는 밤늦게까지 춤출수 있기 때문.최근 2-3년동안 대구 신세대사이엔 춤열풍이 불고 있다. 90년대 들어 대봉교밑 고수부지에서 가끔 볼수 있었던 이들의 춤은 이제 중앙공원, 어린이회관, 중앙도서관은 물론 심지어 지하철 대구역과 교대역에서도 볼 수 있다.
왜 그토록 춤에 몰입할까. "춤추는게 단지 즐겁다"며 "춤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고, 헤어나고 싶지도 않다"는 전형찬군(19). 김모군(18)은 "춤추는 친구들끼리 모이는게 좋고, '입시'같은 복잡한 걸 잊을 수 있다"고 털어놓는다. 자신의 '행위'를 이해하는 '또래'가 있고, 그들을옥죄는 속박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는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들은 춤추기위한 '공간'과 '여건'이 나쁘다고 항변하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강한 주체성을 지녔다.
대구지역에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써클'이 허용되는 학교는 드물다. 게다가 일주일에 1시간정도 배당된 '클럽'활동도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의 뒷전으로 밀린다. 춤이나 노래, 붓글씨,그림 등 '입시 이외'의 취미나 개성이 발붙일 틈이 없다.
'춤문화'를 즐기는 신세대들은 이처럼 닫힌 학교공간 대신 공원이나 고수부지를 찾는다. 여건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집요하다. ㄷ,ㅅ,ㅇ고 등은 학생들의 요구와 일부 교사들의 노력으로 한달에 4번씩 하는 '유명무실한' 클럽활동 대신 한달에 한번은 하루종일 클럽활동만을하는 '전일제'를 도입, 호응을 받고 있다. 특히 ㄷ고 등 일부 실업계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댄스팀'활동을 공식 인정받고, 실습실 공간도 확보했다.
또 새로운 춤을 배우기 위해 서울 이태원 등지에서 외국 유명 댄스그룹이나 백댄스의 비디오 테이프를 직접 구입하기도 하고, 춤에 맞는 신발이나 옷을 구하는데도 신경을 쓴다.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의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장판'을 휴대하는 건 기본.
이들은 "대구팀의 춤솜씨가 전국에서 으뜸이었지만, 최근 1-2년사이 서울팀에 밀린다"고 입을 모은다. 써클활동의 자율성과 학내 연습공간, 마로니에 공원과 같은 열린공간이 풍부한서울. 반면 대구의 경우 대구백화점앞 '어울마당'과 우방랜드의 '춤경연대회'가 매월 한차례씩 열린 게 고작이었지만, 그나마 춤경연대회는 IMF이후 사라졌다. 'R·S·C' '윌리' '광아' 'LINE' '21세기' '제닉스' '열풍' 등 춤에 몰입하는 신세대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수업이끝난뒤 '자신들만의 공간'과 '또래'를 만나기 위해 공원과 지하철역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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