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화가의 변명

"이 그림은 그리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습니까?" 사람들이 전시장에 걸린 내 그림을 가리키며 가끔씩 하는 질문이다.

사실 내 그림은 작업 공정만으로 따진다면 그렇게 오래 그리는 그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척 빨리빨리 잘 그려내느냐 하면, 그렇지가 못하다.

재주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변명을 하자면 생각을 발효시켜 마음에 드는 형상을찾아내는 일이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아서 어떨때는 생각이 막혀서, 또 어떨때는 형상이 떠오르지가 않아서 작업이 제자리를 맴돌때가 많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서너달을 아예 그림한장 못 그리고 화실 의자에 앉아만 있은 적도 있고, 혹은 서서 하염없이 파지만 만들기도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장 그리는데 몇시간 하는 식으로 산술적 계산은 별 의미도 없고 또 잘 맞아 떨어지지도 않는다.

일단 작업에 들어가면 시간과의 함수관계는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화실에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면서 작업시간을 늘려봐도 항상 모자라게 마련이다.이때쯤이 나의 재주없음을 비관하는 슬픈 시점이다. 그러나 작업실 밖의 현실은 나의 이런방황을 마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요즘은 전시도 시대의 흐름을 쫓아 질보다 양으로 따지는물량공세가 된 지 오래이다.

자연히 작업실에서 하는 작업도 수많은 전시 일정을 따라 허둥지둥하기 마련이다. 어쩔 수없이 설 익은 떡도 담아내고, 발효가 덜된 된장도 퍼내고…. 맛이 제대로 날 리가 없다는 것은 본인이 제일 잘 알면서도 그렇게 바쁜 현실과 타협을 하고 만다.

그러나 마음은 영 불편하고 부끄럽다. 그래서 한 작품을 끝내고, 다음 그림으로 들어갈때마다 항상 하는 똑같은 결심이 있다. 그것은 다음 그림은 꼭, 제대로, 천천히, 마음껏 그려야지하는 지키기 어려운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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