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윤기 세상읽기-아해야, 달따러 가세

'…맑은 시냇물 청산으로 돌고 이 골물이 좌르르르르 저골물이 콸콸, 열의 열 두 골물이한데로 합수쳐 천방져 지방져 언덕져 구비쳐, 강물이 버끔져 건너 바위에다 마주 꽝꽝 때려…'

판소리 '심청가'에 나오는, 내가 즐겨 듣고 즐겨 부르는 대목이다. '수궁가'에도 약간변형된 모습으로 등장하는 이 대목은 우리 소리시늉말(擬聲語), 짓시늉말(擬態語)이 지니는음역 범위를 돋우어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대목을 듣고 있으면 골물이 불어 강을이루는 정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나는 이따금씩 외국인들에게도 이 대목을 들려주면서 우리말의 엄청난 음역 범위를 자랑하고자 했다. 하지만 우리말만 그런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가 '꼬끼오'로 듣는, 닭우는 소리를 미국인은 '커코두들두'로듣는다. 우리가 '냐용'으로 듣는, 고양이 우는 소리를 미국인은 '미야우'로 듣는다. 외국인들의 소리시늉말은 아무래도 우리말의 소리시늉말보다는 못하게 들린다. 우리가 '우르르릉'으로 듣는, 천둥치는 소리를 일본인은 '고로고로'로 듣는다. 우리가 '번쩍번쩍'이라고 표현하는, 번개치는 형용을 일본인은 '비까비까'로 표현한다. 우리말의 소리시늉말,짓시늉말은 실제와 매우 닮아 보이고 외국의 그것들은 어쩐지 조금 모자라 보인다.판문점의 통역 과정에서는 이따금씩 재미 있는 장면이 벌어지고는 한다. 바로 소리시늉말과짓시늉말 때문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자.

'I heard a strage sound like chulkerduck(그때, 철꺼덕 소리가 들리는게 아니겠어요)…'우리는 이 '철꺼덕'소리를, 누군가가 소총에다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로 알아듣는다. 그러나 이 영어 문장을 듣는 미국인은 이 소리를 절대로 탄환 장전하는 소리로 알아듣지 못한다. 그들의 귀에는 장전하는 소리가 '철꺼덕'으로 들리지 않는 것이다. '크랙(crack)'이라고 해야 그들 귀에는 우리말의 '철꺼덕'과 아주 비슷하게 들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크랙'을 비웃어서도 안되고 우리의 '철꺼덕'을 그들에게 강요해서도 안된다. 우리가 지금

은 우리 한글을 이용해서 소리시늉과 짓시늉을 매우 근사하게 베껴 쓰고 있지만 옛날에는그렇지 못했다. 옛글을 공부하지 못한 사람이 가령 다음과 같은 소리시늉말을 무슨 수로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인가?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옛 '어부가(漁夫歌)'에 나오는 후렴구다. 배가 떠날 즈음 닻을 감아 올리고 노 저을때 나던 소리를 어부가 쓴 사람은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무엇인가? 지금의 우리말로 표현하면'삐그덕 삐그덕 어허야' 정도에 해당한다.

사람은 이 세상 만물의 짓과 소리를, 그 사람이 쓰는 문자의 음운체계에 맞추어 듣는 경향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사람이 쓰고 있는 문자로써 음역이 가능한 소리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 귀에는 '칙칙폭폭'으로 들리는 기차 소리가 일본인의귀에는 '찌찌뾰뾰', 미국인 귀에는 '츄츄허쉬허쉬'로 들리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한자로밖에는 짓과 소리를 베껴낼 수 없었던 옛사람들의 귀에는 '삐그덕삐그덕'이 '지국총지국총'으로 들렸던 것이다.

음악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자기가 낼수 있는 소리로 듣는 경향이 있다. 음치는 세상의 소리를 자기 성조(聲調)로 듣기 때문에,어떻게 틀리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세계가 넓어질수록 고유의 문화, 흡사 사투리와 비슷한 고유의 문화는 그만큼 더 소중해진다. 하지만 남의 문화, 남의 성조도 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어릴 때 자주 부르던 동요에, '얘들아 오너라 달따러 가자'로 시작되는노래가 있었다. 당시 이미 연로하셨던 숙부님은 당신께서도 이 노래를 부를 줄 안다고 하셨다. 해보시라니까, 옛노래 투로 이렇게 노래하셨다.

'아해야, 달따러 가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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