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대의 걸작', 영화의 발명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1895년 12월 28일 파리 그랑호텔 지하의 그랑카페. 이날 여기에 모인 33명의 관객은 평생 잊을수 없는 경험을 했다.
이날 프랑스 뤼미에르형제는 1프랑씩을 받고 모두 10편의 '움직이는 그림'을 보여주었다. '시오타역에 도착하는 기차''전구공장 노동자들의 외출''물뿌리는 정원사'등. 모두 1분 내외의 흑백영상들이었다. 기차가 역 플렛폼으로 들어오는 것을 찍거나 공장문을 나서는 노동자들의 움직임을찍은 단순한 활동사진이었다.
그러나 관념의 세계가 현실로 나타난 것을 확인한 사람들의 놀라움은 대단했다. '타임머신의 등장'인 것이다.
기차가 다가오자 두려움에 몸을 떨기도 하고 급기야 문을 젖히고 뛰쳐나가기도 했다.이 해는 X레이가 발견됐고 무선전보가 발명됐으며 소설가 H.G 웰즈의 '타임머신'이 탈고된 해이다. 새로운 세계가 인류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역사학자들은 "인류의 아름다움이 시작된 해"라는 칭송을 보내기도 했다.
영화는 예술적 안목이 아니라 과학적 호기심으로 잉태된 예술이다.
돈을 벌수 있는 사업으로 본 '벤처기업가'들도 있었다. 그들이 바로 미국의 과학자 에디슨, 그의 조수 윌리엄 케네디 딕슨, 코닥의 이스트만같은 이들이다.
에디슨은 뤼미에르의 '적수'였다. 1893년 이미 블랙 마리아라는 스튜디오를 설립해 뉴욕시에서허드슨강을 무대로 펼쳐지는 동물과 인간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아 상영했다. 그러나 활동사진에대한 국제 특허를 받는데 필요한 1백50달러의 비용을 내는 것을 거절해 뤼미에르형제에게 영화역사의 첫 장을 빼앗기는 대실수를 저질렀다.
영화에 대한 관점에서 그는 뤼미에르와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가졌다. 자신의 스튜디오를 통해 기계를 파는데 집착했다. 그가 만든 키네토스코프는 대중이 볼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이들여다볼 수 있는 요지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뤼미에르의 시네마토그라프는 빛의 마술이었다. 어둠속에서 쏘아지는 빛이 스크린에비춰지면 관객은 홀린 듯이 그 빛에 빨려 들어갔다. 산업화시대의 '군중속의 고독'이 새로운 매체를 통해 현실화된 것이다.
영화는 신기술에 머물지 않았다. 무한한 상상력을 투영시키면서 예술과 유희를 위한 도구로 승화돼 갔다. 그중 조르주 멜리에스란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찰리 채플린은 그를 '빛의 연금술사'라고 했다.
멜리에스는 영화에 최초로 극영화 내러티브, 즉 이야기 요소를 이용한 사람이다. 줄거리를 넣어사람들의 감정을 터치하는, 예술과 오락을 결합한 픽션영화의 시초다.
특히 그의 '달세계 여행'(1902년)은 공상과학영화(SF)의 효시로 손꼽힌다. 30여개 신으로 이뤄진이 영화는 1902년 9월 개봉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급기야 세계 순회에 나서기까지 했다. 멜리에스는 '페이드 인''페이드 아웃''오버랩''디졸브'등 편집기술을 개발해 냈다. 그의 실험정신은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요정들의 왕국'(1903년)에서는 손으로 직접 필름을 염색하는 방법까지썼다. 최근 영화에 쓰이는 디지틀 특수효과의 원형이다.
결국 영화는 뤼미에르가 낳고 멜리에스가 기른 '빛의 아이'인 셈이다.
에디슨 실험실에서 '어설픈' 실험으로 시작된 영화는 프랑스로 건너가 뤼미에르와 멜리에스를 거쳤다. 그러다 다시 할리우드로 건너간 영화는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예술과 산업의 하나가 돼가고 있었다. 〈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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