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문화의 계절이며, 10월은 문화의 달이다. 위축된 문화예술 활동에 대해서는 접어두고 '향토축제'에 대한 소식만 들어봐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경제난국과 수재 때문에 올해는 향토축제를 아예 거르거나 규모를 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본래의 의미가 희석된 채 명맥만 잇는 연례행사라는 느낌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문화의 주체성이 실종되고, 공동체 의식과 나눔의 마당을 이끌어내지 못한 축제들만 의례적으로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의미 희석 명맥만
문화의 주체성이란 주민들이 그 지역의 문화를 통해 주체성을 확인하고 삶의 의미와 만족을 확신하는 데서 싹트고 자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서양의 물질 문명과 편리한 삶만 지향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축제를 생활 속에 심어왔다. '삼국지·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은"…부여에서는 은력(殷曆) 정월에 하늘굿을 올리며 온 나라 사람들이 며칠을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춘다…"고 전한다. 다른 기록들까지 종합해 보면 대개 정월·5월·10월에 공동체 잔치를 벌였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축제들은 단순히 먹고 마시고 노는 잔치만은 아니었다.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 씨뿌리기를 마친 5월, 추수를 끝낸 10월에 주로 열렸으므로 일의 시작과 마무리와 연계된 잔치들이었다.더 큰 수확을 염원하고 다지고 구가하면서 내일의 번영과 태평을 기리는 삶의 일정표들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젠 먹고 마시고 즐기는 풍조로 축제의 분위기와 정신이 왜곡·변질된 감이 없지않다.
◆전통 바탕 공동체 잔치로
지방에서 열린다고 모두 '향토축제'는 아니다. 유서깊은 지역 전통문화와 향토성에 뿌리를 둔 공동체 잔치여야만 한다. 더구나 그 본보기가 될만한 축제들마저 옛과 오늘이 상호 충돌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어 문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향토축제는 독창적이고 다양한 전통문화를 재현·음미하는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그같은 문화를 더욱 뼈대있게 하려는 정신의 발양이 뒷받침돼야한다. '우리'로 통하는 공동체 의식을 다질 수 있고 '따스한 나눔의 마당'도 될 수 있어야 한다.우리의 향토축제는 대부분 70년대 중반 이후에 생겼고, 관례적 행사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는데도문제가 있다. 원래는 마을 사람들에 의한 민간 주도의 행사였으나 단절된 문화 복원 차원에서 관주도형으로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향토축제가 활성화되려면 그 지역의 전통에 뿌리를 둔 축제여야 하고, 주민들이 적극 참여함으로써 신명을 되찾고 서로 일체감을 확인하게 돼야만 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축제 가운데도 전통문화를 가장 성공적으로 계승한 예가 일본의 마스리(축제)로 꼽힌다. 그 지역 신앙의 구심체인 신사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마스리는 일본 전역에 그 수만도3천개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의 향토축제가 특성이 없고 뿌리마저 흔들리는 '형식적인 행사'로 변질되고 있는 요인은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향촌의 구조적인 변화에 있다. 그렇다고 전통의 상실과 뿌리 없는 도시화가 우리 생활의 패턴이 된다면 우리 문화의 행방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시작된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은 기대치를 높여준다. 올해 행사는 더욱 호응을 얻고 발전적기틀도 마련했으며, 국제화시대의 향토축제로서 우리의 전통을 새롭게 이끌어내고 세계를 향한관광 자원화 가능성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위기 극복 슬기와 동력
심각한 경제 위기로 나라 전체가 위축된 상황이지만 이런 때일수록 일체감을 일구고 새로운 꿈을향한 의욕을 북돋워줄 축제가 중시돼야 하리라고 본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나라가 어수선하고생활하기 힘들 때 서로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는 슬기를 보였다. 그 동력은 바로 공동체 의식과 문화의 주체의식을 고양시켜주는 축제였다고 믿는다. 향토축제는 그런 분위기 만들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매개체라는 점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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