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IMF 1년 지금우리는-공부하는 근로자들

포항공단내 조선선재 총무과장 차찬열씨(37)는 고교를 졸업한지 19년만인 올해 대학생이 됐다. 월급마저 줄어든 상황에서 연간 3백만원이 넘는 등록금은 큰 부담이었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는생각으로 부인 문영조씨(37)와 상의한 끝에 진학을 결심했다.

요즘같이 대졸자가 흔해빠진 상황에서 고교졸업 학력이 전부인 차과장이 '실세'라고 부르는 총무과장 자리를 차고앉은 것도 흔하지 않은 일. 이왕이면 회사에서 좀더 인정도 받고 이참에 장래보장도 확실히 해두자는 생각에서 대학문을 들어선지 1년이 지났다.

차과장이 퇴근과 동시에 쏜살같이 차를 달려 오후6시50분에 도착한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동대본관. 10분밖에 남지않은 수업시작시간에 맞추기 위해 보험회사 간부 김복규씨가 숨을 헐떡이며강의실을 들어서고 포철 교대근무자 정태주씨(42)가 뒤를 이었다.

1교시 '영어실습' 수업시작과 함께 헤드폰을 끼고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20여명. 바로 옆의 강의실에도 비슷한 숫자의 '늙은'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21살 여사원부터 54세까지, 말단 생산직 사원에서 고급공무원.중견기업 임원까지 모두가 직장인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주경야독(晝耕夜讀)의 만학(晩學)을 시작한 것은 공통적인 이유. 워드프로세서와컴퓨터통신을 통한 정보수집, 영어회화 정도는 기본이 돼버린 마당에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또 이 나이에 공부를 시작할수 있다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고용안정은 확보하는 셈이라고도 했다.

IMF시대를 적극적으로 활용,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새로 공부를 시작한 실력파들도 있다.포항공대 철강대학원 석사과정에는 국내 철강업체에 다니는 엘리트사원 60명이 재학중이다. 대부분 소속회사가 학비와 관련비용 모두를 부담하며 '키우는' 인재들.

이밖에도 공부하는 근로자는 크게 늘었다. 공단내 대기업에서 회사 자산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이영덕과장(40)은 회사가 대주는 직업훈련분담금으로 지게차와 중장비 운전을 배우는 중이고, 포항상의 직원 15명은 오전7시부터 두시간동안 전문강사를 사무실로 초빙해 일본어 회화를 배운다.자기계발을 등한시하는 근로자는 더 이상 산업현장에서 버텨내기 힘들다는 공감대가 어느새 뿌리내렸다. 강원산업 민영화이사는 "공부한다는 자세만으로도 회사가 해당 근로자에게 보내는 신뢰도는 배가(倍加)된다"고 말했다.

경북인력은행 조정숙팀장도 "실직자가 재취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3개의 공인자격증은 있어야한다. 자격증이 개인의 실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성실도를 보증하는 수단은 된다고 보는게기업주들의 입장"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10월말 현재 포항공단(포철제외)의 상시근로자는 1만9천여명. IMF 사태 1년을 거치는 동안 모두 3천3백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여기다 상시근로자의 20% 이상을 차지하던 일용직을 합치면 최소한 7천명 이상이 실직자 신세로 전락했다는게 업체 관계자들의 추산이다. 공부하지 않는근로자는 회사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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