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고려장이 성행할 때의 얘기 한토막. 관례대로 초로의 아비는 칠순을 넘긴 할머니를 져다가깊은 산골짜기에 지게째로 버린채 돌아섰다.
그런데 졸졸 따라오던 막내가 지게를 챙겨 짊어지고 내려오는게 아닌가. "지게째 버리는 것인데왜 갖고 오니" "아버지가 늙으면 다시 써먹으려고요" 순간 20년후 자신의 모습을 생각한 아비는아무말 않고 할머니를 모시고 내려왔다던가.
이 얘기는 역지사지(易地思之:처지를 바꾸어 생각함)의 좋은 예화가 아닐까 한다. 어쨌든 세상살이 하다보면 내가 손해보더라도 어려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덕을 베푸는 것이 필요할 때가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보기도 좋고 뒷 끝도 잘 풀린다.
그렇지만 말이 쉽지 천하를 뒤덮을 큰 재산가나 권력의 정점에 선 사람이 스스로를 낮추어 양보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최근 YS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취소하는 일련의 소동을 지켜보면서 권력무상이란 느낌과 함께사람이 역지사지 하기가 이렇게도 어려운지 새삼 느낄수 있었다.
YS는 집권하자 자기가 누구덕에 정권을 잡았는지, 자신의 지지세력들이 어떤 성향인지조차 외면한채 느닷없이 '역사 바로세우기'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어찌보면 자신의 집권에 결정적인 공로자일수도 있는 전두환.노태우 두사람의 전직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권을 내놓은지 불과 1년도 채 안된 현 시점에 청문회 소환장을 받고 기자회견을자청했다 취소하는 소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95년12월 연희동 골목길에서 기자회견을 자청, YS에게 항변하는 전두환씨를 합천 생가까지 추적, 끝내 투옥시켰던 강기의 YS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가 이번에는 자신과 아들의 구명을 위한항변성 기자회견을 검토하고 있으니 '내가 한대로 받고 씨 뿌린대로 거두게 되는' 세상 이치에새삼 전율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전씨와 노씨를 투옥했으니 YS 당신도 당연히 당해야 된다는식의 얘기를 하고 싶어 이 말을 하고 있는게 아니다.
그보다는 YS가 전.노씨 두사람을 감옥에 보내면서 입장을 바꾸어 "나도 잘못하면 감옥에 갈 수도있겠구나"라는 평범한 역지사지의 진리를 깨달았더라면 좀더 정신차려 나라 일을 챙길수 있었을것이고 최소한 지금처럼 자신의 안위를 위해 변명하는 그런 초라한 모습만은 면했을 것만 같아안타까움에서 하는 소리다.
따져보면 역지사지 하는 마음이란 나와는 상반(相反)되는 입장에서 세상을 객관적으로 다시한번바라보는 냉철한 마음을 뜻한다.
그런데 비단 YS뿐 아니라 우리들 대부분이 이 점이 참으로 부족한 것만 같다. 그냥 약간의 끗발만 있어도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고 막 밀어 붙인다. 그러다 처지가 뒤바뀌면 그때는 지금과는 정 반대의 논리로 막 간다. 지금 우리 정치판이 이런 행태에 딱 들어 맞다고 보아 무방할 듯하다. YS집권후 1년이 되는 94년에도 우리 정치판은 지금과 꼭 같았다.
여당의 야당의원 영입과 정계개편설에 야당은 장외로만 겉돌았다.
YS가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이기택총재를 정치 파트너로 인정 않았던 것까지 지금과 어찌 그리닮았는지….
우리 정치인들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치발전은커녕 그때의 정치판을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채 맴돌고 있는 것이다. 굳이 달라진것을 따진다면 당시 야당이 여당으로 변신, 막 밀어붙이고있고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역할을 바꿔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며 장외로 돌고 있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만약 지금의 여당이 입장을 바꾸어 94년 당시 여당이던 민자당의 무차별의원 영입과 정계개편설로 당이 초토화 될때의 황당했던 심경을 기억할 수 있다면 호남세력의 '동진(東進)'이나 정계개편, 야당의원 구속등의 얘기를 그처럼 쉽사리 꺼내지는 못할 것이다.
한나라당도 그 당시 밀어붙이기를 하면서 득의연 했던 스스로를 되돌아본다면 부끄러워서라도 요즘처럼 이렇게 당당히 "민주 수호를 위해 장외집회를 한다"고 강변하지는 못할거란 생각도 든다.아무튼 여야가 이처럼 상대방을 의식치않는 일방적인 정치공세로 일관해서는 나라꼴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저간의 사정이 말해준다. 건전한 야당이 존재할 때 좋은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만큼 여야는 이제 당리당략을 떠나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아가서는 참담한 이 백성의 심경을 헤아리기 바란다. 그렇게해야 정치가 신뢰를 회복하고 나라가 회생한다.〈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