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영남기행 (16)-울릉(3)금단의 땅 독도

독도.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땅. 무한한 상징성을 넘어 '아픔'까지 간직한 동해의 한 점. 독도를 껴안고 있는 울릉도. 이 곳 건물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동해 바다에 치솟아 있는 '독도 사진'이 약속이나 한 듯 건물들마다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것. 1999년 4월. 한일 어협으로 '무인도'란 또 하나의 생채기를 얻었지만 독도는 여전히 푸르렀다.

"제대로 갈 수가 없으니 우리 땅도 아닙니다"

울릉 주민에게 있어 '돌섬'의 의미는 다르다. 돌섬은 섬사람들이 독도를 부르는 말. "돌섬은 할아버지때부터 삶의 터전입니다. 미역을 따고 고기를 잡는 어장의 일부죠"

하지만 요즘 섬사람들에겐 독도가 안타까움이다. 한번씩은 '분노'로까지 이어진다. 자신들의 땅을 가까이 할 수 없는 현실 탓이다.

"지난달 그물이 찢긴 어선 두척이 독도에 입항해 어구를 손보려다 우리 경비대원이 겨눈 총에 뱃머리를 돌려야 했습니다" 선주협회장 김성호(55)씨는 "독도가 왜 이 모양이 된지 모르겠다"며 말을 잇는다.

'외교적 마찰'. 섬사람들이 독도에 갈수 없는 유일한 이유다. 울릉군 도동리 산 42번지. 마을 공동 어장이 있고 고기떼가 있는 곳. 40년전 '울릉 경비대'를 만들어 피땀으로 지켜낸 그들의 땅이지만 이젠 접근할 수 없는 금단의 땅이 됐다.

독도에 발을 닿으려면 입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웬만해선 허가가 안된다.도동 어촌계장 장영길(45)씨는 "독도 앞 마을 어장에 갈때도 배를 독도에 대지 않는다"며 "그냥 배위에서 작업을 하곤 바로 돌아온다"고 했다.

지난 정권때 '독도'는 많이 변했다. 우리 땅이라는 시위라도 하듯 선착장이 들어섰고 등대와 어민숙소가 잇따라 독도 한자락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독도는 더 멀어졌다.

"지난해 5월 서도에 어민 숙소가 완공된 뒤 총 이용 횟수가 9번쯤 됩니다. 하지만 어민들은 한번도 사용을 못했습니다. 모두 학술 연구팀이나 높은 분들만 다녀갔죠"

숙소를 관리하는 울릉군청 농정과 임장원(33)씨는 "피항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지만 현재로선 전혀 기능을 못한다"고 밝혔다. 물론 어민들에겐 입도 허가가 나지 않는 탓이다.

하지만 허가가 있어도 갈 수가 없다. 배를 댈 수 있는 승가장이 없는 탓이다.

여기서 유일한 독도 주민 김성도(60)씨 항변은 울분으로 와 닿는다.

"어민 숙소를 지으면서 애써 만들어 놓은 승가장을 부순뒤 복구를 해 놓지 않아 2년 동안 제대로 가지 못했습니다. 죽을 때까진 독도 주민으로 살 것이지만 갈수록 어려워지네요". 독도 경비를 경찰이 맡고 있는 것도 섬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솔직히 주민도 없는데 왜 경찰이 경비를 합니까. 우리 땅을 지킨다면 당연히 군 병력이 상주하는 것이 순리죠"

하지만 외지 사람들로 구성된 독도 경비대원들이 겪는 고생도 여간치 않다.

경비대장 안현주(37)씨는 "한번씩 이 섬을 둘러싼 외교 마찰이 빚어지면 밤잠을 설칠 정도로 민감해진다"며 "두달씩 교대로 독도에 들어가는데 한 번 가면 몸무게가 5㎏씩 빠지지만 자긍심 하나로 버틴다"고 했다. 얼마전 완공된 유인등대도 '독도'의 처지를 대변하기는 마찬가지.

분명 1월 2일부터 동해 밤바다를 비춰왔지만 정부에서 짧게나마 완공 발표를 한 것은 취재진이 울릉도에 머무른 4월. 이상한 일이지만 섬사람에겐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지난해 12월 섬사람들에겐 잊지 못할 큰 사건이 있었다.

도동 산 언덕, 독도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독도 박물관'이 들어선 것. 삼성그룹에서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80억원을 투입해 군청에 기부 채납을 했다. 하지만 이 조차 이젠 '아픔'이 됐다.

"박물관이 문을 연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인데다 장관을 포함한 높은 어른들이 줄지어 온다는 소식에 섬 전체가 흥분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대구까지 왔다는 '장관분'들이 갑자지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로 돌아가 버린 것. '외교적 마찰을 우려한 때문'이라는 뒷소문만을 들어야 했다.

박물관의 위상도 문제. "연간 관리비가 4억원이 들어가는 탓에 군에서 운영하기는 어렵습니다. 수차례 국비 지원 요청을 했지만 현재로선 기약이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땅'이라는 상징성을 위해 지어진 박물관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

그래도 600여점의 독도 관련 전시물이 있는 박물관은 이제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겐 꼭 찾아야 할 명소가 됐다. 지난 54년 '울릉 경비대'에서 현재의 '푸른 독도 가꾸기 모임'까지. 섬 사람들의 개척 역사는 '독도 사랑'과 함께 해 왔다.

예전처럼 쉽사리 갈 수는 없지만 섬사람 모두의 가슴 한편에 자리잡고 있는 독도."울릉도에 주민이 사는 한 돌섬에 대한 애정은 계속될 겁니다"

독도의 풀 한포기와 돌멩이 하나. 섬사람의 숨결이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

〈취재=李宰協기자 ·許榮國 기자 사진=朴魯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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