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北 베이징 차관급회담 왜 미루나

북한이 이렇게 나오는데도 굳이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남북 차관급 당국회담을 열어야 하나.

21일 오전 한차례 연기에 이어 개최 예정시간인 오후 3시(현지시간)를 겨우 40분 앞두고 서야 이날 남북 차관급회담 연기를 통보해 온 북한 태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과연 북한이 남북한의 당국간회담 개최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북측은 이번 베이징 회담을 연기시킨 이유로 당초 남북간에 합의된 이달 20일까지 북한에 도착할 비료 10만t중 마지막 2만2천t이 아직 북한에 도착하지않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북한이 문제로 삼은 비료는 비가 내려 선적이 늦어졌을 뿐이고 지난 20일 여수항을 떠나 이날 밤 북방한계선(NLL)을 통과, 22일 새벽에 북한 남포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굳이 이날 오후 3시 현재 비료가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을들어 또 다른 합의 사항인 21일 베이징 차관급회담 개최를 연기했다.

이번 사태를 지난 3일 베이징 비공개 접촉의 합의 이행을 위한 북한의 단순 압박으로 받아들이면 아무 일도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서울 불바다 발언'의 장본인인 박영수(朴英洙)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을 이번 차관급회담 북측 수석대표로 내세우고 대표단 명단 조차 미리 통보해 주지 않았다.

차관급회담에 별로 뜻이 없다는 점을 여러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북한의 차관급회담 연기 사태는 아직 남북간의 주고받기식 문제해결 방법을 북측으로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음을 드러낸 증거로 볼 수 있다.

오는 22일 남포에 비료가 도착하더라도 현재로선 북한이 또 다른 사안을 들고나와 이산가족문제 우선 협의를 차일피일 뒤로 늦출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차관급회담의 남측 수석대표인 양영식(梁榮植) 통일부 차관이 21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비료가 도착한 다음 북한 반응을 지켜 보자"고 말한 것은 이런 측면에서 곱씹어 볼 대목이다.

양 수석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베이징에 그대로 머물 것이며 회담 재개 시점도 그다지 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목은 북한의 지연전술과 격하전략에 맞서기 위해 기존 합의를 강조하는 성격이 다분하다.

정부도 아직은 드러내놓고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북한의 진의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북한의 말뒤집기식 지연전술로 인해 정부도 대북지원정책을 마땅찮게 여기고 있는 일부 국내 여론의 움직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마저 있다.

이럴 경우 오는 7월까지 북한에 지원키로 약속된 비료 10만t 지원을 놓고 정부로선 상당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북한이 노리는 포인트에는 이같은 정부와 여론의 갈등을 부추기는 속셈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또 같은 베이징에서 23일 북한과 미국의 고위급정치회담이 예정돼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북한은 이날 이미 주중대사관에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는 정전협정의 대상인 미국과 이야기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현재로선 다시 남북 차관급회담이 열리더라도 NLL문제를 남측과 논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사정을 종합하면 남북 차관급회담의 앞날은 결코 밝지가 않다. 또 조만간 남북 차관급회담이 열리더라도 정부가 기대하는 이산가족 해법에 북한이 선뜻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한측의 비료 지원이 완료되는 7월까지는 남북 차관급회담을 지연시키커나 이산가족문제 해결의 실질 토의에 앞선 여러가지 장애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산가족 시범 프로젝트 하나를 받아내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북한의 생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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