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우리사회 이중적 잣대

우리는 얼마전 공안부 부장 검사가 점심시간에 위스키와 맥주를 섞어 몇 잔 마신 다음 기자들에게 오프 더 레코드(기사화하지 않음)를 전제하고 말한 조폐공사 파업 사태에 대한 발언 내용이 한 신문에 기사화 되어 결국 그가 검찰에 의해 구속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이 사건은 이미 뉴스의 시야에서 벗어나 과거에 있었던 일로 옮겨져 갔다. 그간 이 사건에 대해 실린 사설과 기사는 "있을 수 없는 일" 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기조 하에 쓰여진 것들이었다. "이런 일이 과거에는 의례 있었던 일"이라든지 또는 "공안부장이란 하라면 해야 하고, 또 하는 일이 원래 그런 일 아니냐"하는 솔직한 의견은 없었다.

듣기로는 공안부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그 일에 그리 놀랄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 일에 놀라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일에 놀란 척 해야 양심적인 인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순박함이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을 지금 정당화하자거나 정상을 참작하자는 말은 아니다. 한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되더라도 고쳐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듯이 놀란 눈을 동그랗게 꾸며대는 기자들의 기사 작성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그 태도가 속물적이기 때문이다. 속물은 이중의 잣대로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잣대를 바꾸는 것을 가리킨다. 삶을 언어화하여 논리의 세계 안에 끌어넣으면 이중의 잣대는 생기게 마련이지만, 우리 사회의 이중적 잣대는 너무나 공공연하다. 종교인의 설교와 그들의 생활이 그렇고, 국회의원의 유세와 의정활동이 그러하다. 이번 사건의 기자 역시 이중의 잣대에 의해 행동한 것이다. 그가 오프 더 레코드를 약속하였다면, 하나의 사안이 개인적 약속과 기자로서의 명성(자신은 사회정의를 주장할 것이다)이라는 두 영역에서 따로 놀아난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은 비유하자면 사람의 입이다. 입이 스스로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입이 자신의 입을 물어뜯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입은 목 이하의 부분인 어깨나 팔을 물어뜯을 수는 있지만 자신의 이웃에 있는 귀나 코를 물어뜯지 못한다. 이번 사건은 검찰이 얼굴에서 내려와 팔로 격하되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유를 계속하자면, 우리가 얼굴을 가리지 않고 만천하에 드러내 놓는 이유는 얼굴을 드러내 놓아야만 남의 시선을 느끼며 스스로 자율적 도덕성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은 자신이 사회의 입임을 알고 자신이 속한 곳이 얼굴임을 알아야 한다. 언론은 스스로 정직하고 도덕적이 되는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잘못을 인정하고 주지시킨 다음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 잘못을 고쳐나가야 한다. 몰랐던 일이라는 거짓 표정을 지으면서 서둘러 고치는 일은 고치자는 것이 아니라 덮어두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경우 매번 희생양만 만들고 고쳐야 할 일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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