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노동사무소의 궁색한 답변

지난달 23일 구미 동국합섬 전직 근로자 정희양씨의 직업병 여부에 대한 논란이 본지에 보도된 뒤 정씨, 노동단체들과 주무관청인 구미지방노동사무소 사이에 행정정보 공개를 둘러싼 마찰을 빚고 있다.

정씨와 산업재해 관련 사회단체인 산업보건연구회는 지난달 26일 구미지방노동사무소에 지난 5년간 동국합섬 작업장의 환경 측정 및 건강검진 보고서, 근로감독 활동 내용 등에 대한 정보 공개를 요청했었다. 그러나 구미지방노동사무소는 정보공개 기한(15일)을 넘기면서 자료 제출을 미루다가 정씨측이 거듭 요청하자 신청 22일만인 17일에야 자료의 일부를 내놓았다.

그러나 제출 자료엔 96년 시정 지시 및 결과, 97년 동절기 중대 산업사고 예방점검 등 7개 항목이 포함됐을 뿐 정씨측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작업장 환경 측정 및 건강검진 보고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구미지방노동사무소는 기업 및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하며 일부 서류는 보관돼 있지 않다는 점 등을 공개거부 이유로 내세웠다. 특히 정씨측이 신청한 '근로감독 사업장 점검과 시정지시 및 조치 결과'에 대해서는 당초 '사업장에 보고 의무가 없어 관련 서류를 보관하지 않고 있다'고 하다가 뒤늦게 96년 자료는 제출하는 등 석연찮은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산업안전보건연구회는 재해 유발 가능 사업장 관련 서류는 5년간 보관하도록 돼 있으며 화학물질 입출고 현황 등 근로감독관 업무규정상 검토 의무가 있는 사항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노동사무소측의 직무유기라고 비난하고 있다. 산업안전연구회의 지적이 아니라도 구미지방노동사무소의 답변은 궁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구미지방노동사무소가 속한 노동부는 산업현장에서 소외되기 쉬운 근로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주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씨 사건 관련 정보 공개를 둘러싼 공방을 지켜볼 때 구미지방노동사무소가 근로자의 권익을 지키려는 성의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노동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행정기관이 사태 마무리에 급급하거나 근로자보다 사업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업무를 처리한다는 불만이 산업현장 곳곳에서 터져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고용 구조가 불안해지면서 작업장 환경으로 인해 질환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큰 근로자들마저도 불이익을 우려, 오히려 숨기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행정기관의 구태는 근로자들의 마음을 밝게 해주기는커녕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지나 않은지.

李宗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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