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김희로의 기구한 일생

세상에 기구한 인생도 많겠지만 9월7일 일본의 후쓰교도소에서 수감 31년만에 가석방 될 김희로(金嬉老)씨 만큼 기구한 인생이 또 있을까. 두살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그는 다섯살 때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의붓 아버지 성을 따서 김희로(본명 권희로)가 된다. 의붓 아버지의 구박을 견디다 못한 희로 소년은 13세때 가출한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냉혹했다. 집에서조차 안주하지 못한 '조센진'소년에게 일본 사회는 너무나 냉정했다. 결국 그는 형무소를 들락거리며 청춘을 보내야만 했고 결혼에도 사업에도 실패만 거듭했다. 불운속의 김희로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40세되던 해인 68년 2월20일. 이날 일본 조직폭력배인 야쿠자 2명이 청부 받은 빚 독촉을 김희로에게 하면서 "조센진 이 더러운 돼지 새끼"라는 말에 그는 폭발한다. 어릴 때부터 한국인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그 얼마나 많은 천대를 받아야 했던가. 희로의 분노는 폭력배 2명을 라이플로 사살하고 '시미즈'시(市) 혼카와네 마을 여관의 투숙객을 인질로 경찰과 대치하다 4일만에 붙잡히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일본 당국은 그를 인질극을 벌인 희대의 흉악범으로 몰아 왔다. 그러나 당시 김희로에게 붙잡혔던 인질들은 "김희로가 너무 부드러워서 불안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회상했고 희로를 심문했던 경찰도 TV에 나와 인종 차별했음을 인정했다. 결국 한국인에 대한 차별에 대해 항변하던 김희로가 승리한 셈이다. 그렇지만 김희로씨의 만년은 너무나 쓸쓸한 것만 같다. "내가 재혼한 탓에 희로가 빗나가기 시작했다"며 통한해 하던 어머니 박득숙씨는 지난해 '희로'를 찾으며 가케가와 시립양로원에서 90세의 나이로 쓸쓸히 눈을 감았고 김희로도 71세의 고령에 방광암을 앓고 있다. 너무나 처절한 생애였다. 이런 터수에 일본의 야쿠자 패거리들이 한국으로 귀환 길의 그에게 보복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니 기가막힐 따름이다. 일본은 세계의 문화 대국이기 이전에 여전히 낭인(浪人)이 활보하는 전국시대에 머물러 있단 말인가.

김찬석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