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한해 구미는 시끄러웠다.
IMF 여파가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면서 대우전자 빅딜론이 제기된 탓이다.
"이제 구미는 끝났다" "지역 차별이다"
곳곳에서 극단적이고 거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선산 들판에 공단이 자리한 지 3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뚫린 뒤 낙동강변 불모지 520만평에 들어선 구미 공단.
현대화의 기수로 수출 역군으로 그동안 지켜온 '내륙 최대 국가 공단'이라는 자존심이 일시에 무너진 사건이었다.
"올들어서는 모그룹 위기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대우전자를 빼곤 공단 전체가 잘 돌아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모래성이죠"
구미상공회의소에서 만난 곽공순 조사부장은 구미공단은 벌써부터 '중병에 걸린 상태'라며 설명을 풀어 갔다.
"현재 공단은 껍데기만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할수 있는 두뇌들은 전혀 없고 단순 제품 생산 기지로 전락해 있다"고 했다.비단 곽씨 뿐이 아니다. 공단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위기론에 뜻을 같이한다.
공단 전체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대기업. 하지만 이 대기업들의 생산품목이 전자나 섬유 할 것 없이 저부가가치 일색이다. 또 상품의 수명을 결정 짓는 라이프 사이클도 상당 부문 퇴조기에 접어들었다.
여기에 90년대 들어 뚜렷해진 공단내 생산 기지의 역외 유출과 기업들의 투자 회피는 구미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한다.
"대기업 몇개에 수백개의 하청 업체가 얽혀 있다 보니 대기업 하나가 흔들리면 공단 전체가 진동을 하게 되죠. 문제는 대기업이 무너진다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자생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20년 넘게 전자부품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장범(구미상공회의소 부회장·57)씨의 설명이다. 구미 공단의 한축을 이루는 섬유 분야의 대표 기업 코오롱 공장.
현장 냄새가 물씬 풍기는 김형진 이사는 "현재 가용 공장 면적의 20% 정도가 3국으로 이전을 했다"며 "원사 중심에서 서서히 '타이어 코드'등 첨단 분야로 생산 설비를 이전하고 있는 과도기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코오롱 공장은 그 '과도기'를 너무 늦게 맞이하고 있었다.지난 68년 입주 당시의 설비와 생산 품목으로 90년도에 접어들었고 이제는 가격 경쟁력 저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외국 뿐 아니라 국내 업체와의 과당 경쟁속에서 '밑지는 장사'에 어쩔수 없이 매달리고 있는 셈. 공장을 떠나기 전 한 직원이 던진 말이 가슴을 울렸다.
"몇 년 동안 첨단 설비쪽으로 1천억원 정도 투자를 했지만 땅값만 오르면 두말없이 공장을 처분할 겁니다".
자금난으로 공장 설립 이후 최초의 가동 중단 위기를 겪고 있는 '대우전자'는 입구에서부터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매각 절차를 위해 본사가 구미로 옮기면서 서울 본사 짐들이 정문 앞 마당 한편에 쌓여 있었기 때문. TV와 VCR, 모니터를 생산하는 대우전자는 국내 대표적 가전 공장.
연매출이 1조5천억원에 이르고 TV가 전체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세계적인 저가 PC 붐을 타고 모니터 부문은 물량 소화가 어려울 정도며 TV 시장도 호전되고 있지만 자금난과 바이어 유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김상일 홍보과장은 간략하게 회사 사정을 밝혔다.
실제 대우 전자는 모그룹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공장 가동률이 95%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다. TV나 모니터만으로는 승부가 어렵다는 사실.
"앞으론 TV 하나만 봐도 300인치 화면이 나오는 TMA등 고부가 가치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대내외적인 환경으로 엄청난 자본력이 투입되는 기술 축척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대우 관계자의 설명처럼 단순한 가전제품을 갖고 중국이나 동남아와 경쟁을 한다는 것은 이미 결과가 뻔한 싸움. 과연 2천년을 맞는 '구미의 해법'은 무엇일까. "4공단에 모든 것이 걸려 있습니다" 구미시 김인종 기획관리실장은 단호하게 '4공단의 중요성'을 거론했다.
김실장은 "문화나 교육면에서 구미가 워낙 취약하다 보니 고급 두뇌가 구미에 오지 않고 그러다 보니 단순 부품 기지로 전락하고 말았다"며 "현재의 위기는 70년대식 공단 운영 방식이 그대로 유지된 결과"라고 밝혔다.
결국 미래를 위한 도시 기반을 만들고 여기에서 구미 공단의 '구조조정'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
늦은감은 있지만 이런 점에는 구미는 몇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
첨단 기술을 가진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평당 39만원인 4공단 분양가를 400원으로 낮추고 중소기업 기술 지원센터와 국책 연구소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명문고 육성과 문화 시설 확충도 병행되는 사업.
즉 투자 환경을 조성한 뒤 96년부터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120만평에 이르는 4공단을 연구와 벤처 산업 위주로 만들어 구미 전체에 활기와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는 계획이다. 물론 성공을 위해선 중앙정부와 기업들의 의지가 큰 몫을 차지한다.흔들리는 구미.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단순한 진리가 던져주는 의미가 그 어느때보다 커 보였다.
글 :李宰協 기자, 사진:李埰根 기자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