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이문칼럼-이공대학의 인문교육

전통적 교육의 핵심은 인문학이었고 근대에 들어서면서 순수과학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엘리트가 모이는 한 국가의 대표적 대학들은 리버럴 아트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 즉 문리대(文理大)로 불려 왔다. 이러한 대학관은 대학교육의 근원적 목적이 실용성과는 직접 관계 없는 진리 자체의 탐구에 있다는 교육이념에 기초한다. 진리의 전수와 탐구가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신념이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철학적 및 종교적 진리의 습득과 탐구를 의도하고, 순수과학은 자연의 물리적 이치에 대한 진리의 습득과 탐구를 목적으로 한다.

근래에 이러한 추세는 점차적으로 역전되었고, 현재 그러한 역전은 더욱 극단화되어가고 있다. 진리보다는 실용적 가치가 강조되면서, 인문학보다는 순수과학이, 순수과학보다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날로 더 강조되어 가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의 교육개혁, 특히 대학교육 개혁과 대학의 현실은 이러한 추세를 극명하게 반영한다. 인문계 학생이 급격이 적어지거나 많은 대학에서 인문계 과가 숫제 폐쇄되어가는 반면 자연계 특히 공학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집중되고 있다.

대학교육의 이념과 체제의 이같은 변화는 오늘의 사회적 및 문명사적 현실로 보아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옳다. 역사적 및 사회적 현실을 떠난 교육은 무의미하다. 오늘의 현실은 전통적 대학교육 이념과 체제가 정당화됐던 여건과는 전혀 달라졌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가치는 그냥 진리나 그냥 지식이 아니라 경제적 부의 축적이며, 중요한 것은 전문적 기술이며, 기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첨단과학지식이다. 첨단과학기술이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데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싫건 좋건 이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한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들이 과학기술교육을 어떤 교육보다도 강조하게 된 것은 자연스럽고 또한 당연하다.

역설적이지만 그럴수록 인문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어느 때 보다도 강조되어야 한다. 기술은 어떤 경우에도 그리고 어디까지나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그것의 가치는 어떤 목적의 달성에서만 찾을 수 있다. 똑같은 기술은 목적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으며, 건설적일 수도 있고 파괴적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목적의 설정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목적을 설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몫이다. 인간만이 목적을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부단히 그리고 다양한 개별적인 목적선택과 그것을 달성하려는 과정에 불과하다. 한 특정한 기술이 특정한 목적에 비추어서 선택되고 의미를 갖는 것과 똑같이. 한 사람이 일생동안 선택한 수 많은 개별적인 목적들의 의미와 가치는 그가 갖고 있는 가장 일반적이고 궁극적인 목적 즉 '가장 인간다운 삶'에 대한 비전에 비추어서만 의미를 갖고 평가된다. 그러므로 이같은 궁극적 목적 즉 가치관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설정과 추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기술습득에 앞서 세계와 인간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필요하고 이러한 인식은 한없이 복잡한 자연적, 사회적 및 인간적 모든 현실들에 대한 비판적 사유와 종합적 파악과 종합적 가치판단력을 전제한다. 이러한 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 교육은 바로 언뜻 보아 쓸모없는 듯한 인문교육이다. 모든 지식 특히 과학기술이 날이 갈수록 미세하게 전문화되고 파편화되는 현실에서 첨단과학기술자들은 나무만 보고 숲을 못보기 쉽게 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들에게 인문적 소양이 없다면, 그것은 마치 철없는 어린이에게 폭탄을 안겨주는 격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이공대학의 인문교육 철학의 정립과 전문성을 배제한 교양적 커리큘럼 및 교육방법의 고안이 있어야 한다. 연구중심 이공계대학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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