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서민들은 가늠하기조차 힘든 천문학적 수치의 금전이 떡값이라는 명목으로 오고 간다. 당사자들은 그 돈이 '관례적'인 인사치레라거나, 대가성이 없는 '순수한' 정치자금이라고 항변한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이처럼 인사성이 밝고, 순수한 마음으로 정치인들을 후원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더욱 가관인 것은 부정과 비리의 장본인들이 부여주는 태도이다. 빵 한조각 훔쳐먹은 좀도둑도 벌을 받을 때는 고개를 숙이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법인데, 장안이 떠들썩할 정도로 큰 죄를 짓고 벌받으러 가는 사람들의 태도가 어쩌면 그렇게도 하나같이 당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이 몰상식한 사람들도 아니다. 배울만큼 배우고 요직을 두루 거쳐서 높은 사회적 지위를 점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상식이하의 작태를 태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사실을 정말로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부끄러움을 속으로 감추고 짐짓 태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지극히 정당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물론 당사자의 도덕성 결여가 일차적 원인이 되고 있음에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비리문화의 구조화이다.
원칙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를 찾게 마련이다. 많은 경우 이러한 근거는 '전례'가 제공해 준다. 전례는 보편윤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상황윤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보편적으로 통용되어 온 윤리가 아니라 특수한 상황에서 임시적으로 허용되었던 윤리인 것이다.
이러한 임시적 상황윤리가 시공을 초월해서 행동을 합리화하는 근거로서 거듭 활용되게 되면 '전례'는 어느 사이에 '오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구조화되어, 적어도 그 집단 내부에서는 그것이 마치 정당한 규범인 것처럼 당연시되어 버리고 만다. 원칙은 멀리 밀려나고 도덕성은 마비되어 시비곡직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하게 된다. 급행료, 떡값, 촌지, 정치자금, 부조 등등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뇌물문화는 바로 이러한 '잘못된 관행'이 구조화된 부패문화의 대표들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관행화된 비리'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 정치인이나 기업인이나 행정관료는 관행의 울타리에 안주하고자 하고, 일반시민들이나 사법당국까지도 비리의 당사자를 잘못된 관행의 희생자쯤으로 인식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당사자들은 반성하거나 속죄하기보다 억울함을 호소하기 바쁘고, 사법당국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가벼운 처벌이나 보석, 사면, 복권으로 귀결시키기 일쑤이다.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다 그런거지 뭐!'하고 냉소해 버리고 만다. 이러한 가운데 '관행화된 비리'는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잘못된 관행'은 과감히 혁파되어야 한다. '전례'나 '관행'을 행동의 기준으로 선택하기 전에 먼저 원칙으로 돌아가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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