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세기 비전 바다-(2)조선업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은 우리에게 '21세기 해양대국'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성공을 거둔 10년이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의 세계 조선시장 점유율이 35%로 떨어지고 한국의 점유율이 같은 수준까지 상승했으며 93년 처음으로 우리와 일본의 수주량 순위가 뒤바뀌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한국의 조선 수주량이 831만7천t으로 일본의 수주량 753만4천t을 앞질러 세계 1위의 자리를 차지한 것.

6년만인 지난 99년 우리 조선업계가 다시 한번 일본을 앞질렀다. 한국조선공업협회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99년 1 ∼11월중 한국의 조선수주량(수출선)은 913만7천t에 이르렀으며, 12월에도 계속 호조를 보여 연말까지 1천만t을 넘었다.

이에 반해 일본의 수주량은 지난해 1 ∼10월중 수출선과 국내선을 합쳐 707만5천t에 연말까지 국내선과 수출선을 합쳐 900만t을 밑돌 것이라는 예상이다.8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업계 부동의 최강국은 일본이었다. 전세계 조선건조량 1천800만t(이하 용적톤 G/T)의 40%는 일본에서 건조되었고, 한국 조선업계에게 돌아오는 몫은 20%를 넘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해양대국 입국의 교두보격인의 조선산업 부문에서 세계정상의 기술과 자본력을 구축, 세계최대의 조선국으로서 새천년의 새벽을 연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상반기에 미쓰비시 중공업 등 7개 대형사가 모두 적자를 내는 등 부진을 면하지 못했으며, 일본과 우리나라의 조선수주량 순위의 역전은 당분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다.

우리 정부가 중화학공업 입국을 선언하고, 72년 한적한 어촌이었던 울산 미포 백사장에 최초의 대형 조선사 현대중공업을 건설한 지 27년만의 쾌거다.

국내에는 연간 선박건조량 세계1위(97년 310만t)인 현대중공업을 비롯, 삼성(97년 165만t)과 대우중공업(97년 185만t) 등 연간 건조량이 150만t을 넘는 초대형 조선사만 3개사로 늘어났다.

그동안 한국 조선업계에서는 수주량 외에도 세계최고의 기록들이 숱하게 양산됐다.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최대의 화물선은 현대중공업이 1986년에 건조해 노르웨이에 인도한 36만5천t급 광석운반선 '베르게스탈'호이다. 이 배의 크기는 길이 350m, 너비 64m, 깊이 30m이며, 갑판의 크기는 서울 잠실운동장의 2배에 이른다.

세계 기네스북에 기록된 연간 선박건조량이 세계최대인 조선사도 지난 97년에 5천만t 건조기록을 수립한 한국의 현대중공업이다.

지금까지 제작된 세계최대의 선박용 엔진은 현대중공업이 제작한 7만4천250마력짜리 디젤엔진이며, 최대의 선박용 프로펠러도 이 회사가 제작한 직경 8.5m, 무게 83t짜리 프로펠러다.

현대상선의 5천551TEU 컨테이너에 장착된 이 엔진은 자체중량이 1천970t에 이르고 크기는 3층짜리 주택만하며 시린더의 지름만 90cm에 이른다. 엔진과 프로펠러를 각각 두개씩 장착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쌍축유조선도 국내에서 건조됐고, 34만3천t급 세계최대의 FPSO(부유식 원유생산 저장선)도 국내에서 건조되고 있다.

일본은 130년을 걸려 미쓰비시중공업을 세계최대의 조선사로 키웠으나 우리는 불과 25년만에 현대중공업을 세계최대 조선사로 키운 것이다.

이제 우리 조선업계는 기존의 상선위주의 영업과 생산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선박과 기술집약적인 첨단선박 쪽으로 생산라인을 전환하는 등 새로운 도전에 대비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업도 어느 산업 못지않게 국제경쟁이 치열한 산업이다. 최근 유럽최대의 조선소였던 노르웨이 크베너(Kvaener)사가 조선사업부문을 포기한 것이나 일본 대형조선사들의 조선사업부문 축소 움직임 등은 "1등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로 받아들여 진다.

세계의 선박건조 수요는 2000년대 초반까지는 현재의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며, 우리 조선업의 전성기도 당분간은 계속될 것으로 업계는 낙관하고 있다.

선령 20년 이상의 노후선박이 97년 기준으로만 30.7%에 달해 대체수요가 있는데다 환경 및 안전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여서 신규건조 수요가 꾸준히 창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건조설비규모는 2005년 이후 불황기가 오면 설비과잉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고, 한국과 중국의 설비증설,일본의 설비규제 완화 등으로 세계 조선산업이 구조적인 설비과잉 상태로 빠질 위험도 없지 않으며, 우리업계도 이에 대한 대비를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90년대가 우리 조선업이 세계정상을 행해 양적성장을 거듭한 시기였다면, 우리 조선업의 향후 과제는 고부가가치 선박으로의 생산라인 전환과 품질관리, 기술개발로 정상의 자리를 굳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 조선업은 품질과 기술보다는 저임금과 고환율을 기반으로 한 낮은 선가에 의존해 탱커, 벌크케리어, 컨테이너선 등 범용상선들을 수주하는 패턴을 보여온 것이 사실.

최근에는 국내 업계도 LNG선, FPSO선, 대형여객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수주와 생산으로 서서히 작업라인을 전환하는 중이다.

이 분야는 9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업체들이 건조경험을 축적하기 시작한 분야로 세계 에너지시장의 규모확대와 함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또 21세기에는 시간의 비용화가 두드러지면서 기존 화물선 및 여객선의 초고속화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초고속화물선과 여객선이 2003년 이후의 중장기 유망품목으로는 꼽히기도 하고, 기존 선박의 속도증강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역사상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은 모든 해양대국들은 뛰어난 항해와 조선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가 그랬다.

조선업은 무역과 관광업, 수산업, 해양자원개발 등 해양산업의 토대를 구축하는 하드웨어이기 때문이다.

이제 조선업을 세계의 정상에 울려놓은 우리에게 '세계 5위 해양국'진입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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