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공한 향토출신 재일동포들-김일웅 제작 위원장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현해탄이라 불리는 이 해협은 역사적으로 많은 문명을 일본에 전해준 교역로였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양국의 운명은 바뀌어 이 해협은 수탈과 강제 징용의 통로로 변해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라는 상징이 되고 있다.

이 현해탄을 중심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기구한 운명의 한국인의 삶을 소재로 만든 한 영화가 일본 전국 극장가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일제 강제 징용 이후 5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한 맺힌 그 해협을 다시 건너서 일본으로 찾아가는 한 노인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3번째 해협'이라는 이 영화는 재일동포 2, 3세 실업인들이 모여 만든 작품이라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95년 10월 이 영화가 완성돼 시사회가 도쿄에서 열렸는데 이 자리에는 민단 관계자는 물론 조총련을 포함한 동포 1세들, 일본 영화계 대표 등 500여명이 장내를 가득 메웠다. 이자리에는 현 일본 수상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씨가 당시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자격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이날 시사회가 열린 객석은 영화 상영이 계속되면서 눈물바다를 이뤘다고 한다.

부관페리호를 타고 해협을 건너가는 한 노인의 회고로 영화는 시작된다. 일제 치하 17세의 나이로 고향 경북 상주를 떠나 치쿠호 탄광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회상하는 노인의 모습, 탄광 막장에서의 혹독한 노동, 탄광 감독에게 이유없이 린치를 당하는 처절한 모습 등을 보며 자신의 처지와 같다며 엉엉 소리내어 우는 사람도 있었다.

강제연행으로 끌려와 돌아가지 못하고 이같은 한 맺힌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해서 그들의 아들인 재일동포 2, 3세들에 의해 극영화로 꾸며진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서 진두 지휘한 김일웅(金一雄.57) 제작위원장은 이 영화 주인공의 고향과 같은 경북 상주군 출신이다. 김씨는 도쿄 북쪽 우츠노미야(宇都宮)시에서 빌딩 임대업과 유기장을 운영하며 민단 청년상공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그가 상무직을 맡고 있는 도치키현 상은 신용조합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김위원장의 부친은 그의 나이 14세때 배불리 먹어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일본으로 건너와 배추상에서 막노동을 하는 등 고생끝에 지금의 락키그룹이라는 가업을 이루었다. 5년전 그의 부친은 김씨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작고했다. 김씨는 현재 대학생 아들이 3명 있는데 그들이 초중고를 입학할 때마다 고향 상주를 찾아 성묘하는 등 부자 둘만의 뿌리 찾기 여행을 계속하며 자식들에게 민족교육을 심어주고 있다.

그는 영화 '3번째 해협'의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 보여주며 제작 당시의 상황을 설명과 함께 얘기를 풀어 나갔다.

"123분짜리 이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는 해방 50주년을 맞아 뭔가 재일동포와 관련해 문화적인 것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을 만들기로 하고 뜻을 같이 하는 동포 2, 3세들이 모인 것이 그 계기가 됐지요"

김씨는 일본 전국 각지를 뛰어 60여명의 재일동포 실업인들의 지지를 받고 이들과 함께 제작위원회를 결성하고 자신이 위원장으로 실무적인 일을 맡았다. 또한 김씨를 비롯 회원들은 솔선해서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등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일본 후쿠오카(福岡)에 사는 정신과 의사인 하키기 보오세씨가 경북 상주군 출신 징용 한국인 하시근(河時根)씨의 증언을 듣고 쓴 실화소설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나중에 요시가와(吉川)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마치 자신의 이야기 처럼 당시 큐슈(九州) 일대에 산재한 탄광으로 끌려와 막장 인부로 노예 처럼 일한 하씨의 인생 드라마를 그대로 엮었다. 이 소설은 출간과 함께 70만 재일동포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 영화는 조선의 젊은이들이 탄광에서 하루에 주먹밥 두개만 받으며 인간 이하의 학대를 받다가 각종 사고와 일본인 감독의 폭력으로 죽어가는 모습들을 기록영화처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하씨는 탄광을 탈출해 막노동을 하며 피신하다가 여기서 일본인 여자와 결혼해 해방을 맞아 처를 데리고 고향 경북 상주로 돌아간다. 일본인 처는 친척들과의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일본으로 되돌아가고 하씨는 부산에서 일생을 보낸다. 어느날 그에게 일본에 살고 있던 옛날 탄광 막장 동료가 찾아온다. 조선인들을 그렇게 비참하게 죽게하고 모진 학대를 하던 감독 야마모토(山本)가 그 지방 3선 시장으로 건재하며 이번 선거에서 4선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과거를 감추기 위해 막장이 있던 산과 조선인 광부들의 뼈가 뭍혀있는 무연고 분묘를 뭉개고 공장을 유치하려고 한다.

주인공 하씨는 죄악의 상징으로 탄광박물관을 남기고 무연고 분묘를 지키기 위해 다시 현해탄을 건넌다. 그후 공동묘지에서 야마모토와 싸움을 벌이다 둘다 숨지게 되고 한많은 인생을 마친 하씨는 가족들에게 유서를 남긴다. 그 유서에는 '한일관계는 때 묻은 돌로 남아 있다. 이 묵은 때를 벗겨야만 양국관계는 맑아 질수 있다. 이 불행한 역사를 바로잡아야만 해협을 사이에 둔 한일 두민족의 암울한 과거를 청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하고 있다.

영화 '3번째 해협'은 일본 영화계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김위원장은 "이 영화의 제작이 결정되고 부터 약 18만매 이상의 표가 예매됐으며 개봉 이후 지금까지 3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고 밝혔다.

그후 이 영화는 도쿄영화제에서 최우수 영화상과 칸느영화제 특별상을 받았으며 19회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주연남우상의 영광도 얻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겠다는 김씨의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한번은 서울 힐튼호텔에서 한국 시사회를 갖기 위해 사회각계각층의 내빈들을 초청했었는데 일본인 감독과 일본인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라며 해금되지 않아 행사가 취소되는 어려운 경험도 있다. 이제는 문화개방으로 한국에서의 상영에도 어려움이 없어져 언젠가 전국 극장가에서 개봉될 날을 그는 기다리고 있다.

朴淳國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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