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은 아무래도 풋내기 정치인 푸틴이 미덥지 못한 모양이다. 옐친이 올 초 느닷없이 KGB 출신의 52년생 푸틴을 대통령 직무대행에 임명하고 물러나자 클린턴은 그를 '러시아 민주주의 아버지' 라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러한 극찬의 속셈은 미스터리 인물 푸틴에게 보내는 은근한 압박처럼 여겨졌다. 그러면서 미·러 사이에 가로놓여있는 여러 현안을 열거하며 제로 섬(Zero sum)의 역학이 아닌, 상호 협조적으로 나가는 두 나라 관계를 강조했다. 말하자면 오는 3월 선거에서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푸틴에게 옐친 시절 처럼 잘 지낼 것을 미리 주문한 것이다물론 미국의 우위적 세계질서를 전제한 상호공존의 메시지이지만 어쨌든 2천년 벽두에 클린턴이 국제사회에 던진 화두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상생(上生)이다.
그가 아니더라도 세계사적 문명사적 대전환의 새 천년에 쏟아진, 종교계를 비롯한 수많은 이 시대 지도자들의 메시지는 화해이며, 상생이다. 지난날의 갈등과 반목, 불평등의 장막을 걷고, 화해와 포용, 상생의 광장으로 줄지어 나서는, 아름다운 어깨동무 행렬을 그리는 것이다.
지난 주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기독교 일치(에큐메니컬리즘) 행사도 그러한 '어깨동무 미학'의 하나로 보고 싶다. 행사를 집전한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양 옆에 영국 성공회, 동방정교회 수장들이 나란히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는 장면은, 1천년동안 단결하지 못해온 기독교 분파들이 화해를 기원하는 순간이라며 외신은 큰 의미를 부여했다.
최근들어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해 가해지는 거센 비판 역시 상생의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같은 접근은 신자유주의가 떠받드는 시장원리의 이데올로기가 갈수록 경제적 강자만을 섬기는 제로 섬의 함정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그로 인해 잉여인간으로 전락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보장적 정책을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온 국민을 상대로 한창 노자(老子) 전도에 열을 올리고 있는 철학자 김용옥 교수 또한 궁극적으로 화해를 가리키고 있다. 그는 노자를 이해하기위한 '21세기 3대 과제'라는, 나름의 문제인식을 통해, 인간과 자연환경의 화해,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 지식과 삶의 화해 이 세가지를 목청높여 제시하고 있다. 그 화해위에 설 때 노자의 핵심 사상인 무위자연(無爲自然)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어느 한 쪽의 패배를 조건으로 하는 스포츠 게임은 어떠한가. 일견 모두가 승리하는 상생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 같지만 그 정신은 '어깨동무의 미학'을 지향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공정한 룰의 집행과 준수에서 빛나는 스포츠맨십이 바로 그 것이다. 따지자면 넌 제로 섬(Non zero sum)의 정치학이다. 그리하여 승자로서의 겸손과 패자에 대한 위로, 패자의 승자에 대한 승복과 박수는, 자칫 '너 죽고 나 살기'식의 살벌한 전쟁판 처럼 끝날 대결을 아름다운 화합의 축제로 이끄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선거라고 다를 것 없다. 무슨 수를 내서라도 승리하는 것만이 선(善)이라는 사생결단의 선거는 이미 민주주의의 축제가 아니다. 값진 당선은 무조건한 쟁취의 산물이기 보다, 낙선자의 아름다운 승복을 이끌어내는 과정에 더 골몰한 결과여야 하지않겠는가. 다가오는 4월 총선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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