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4년 한국 국적의 음악인으로는 최초로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에 입상한 피아니스트 백혜선(35)씨. 이후 5년 남짓 국내뿐 아니라 국제음악계에서 그가 갖는 음악적 무게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백씨는 지난 89년 2000년을 빛낼 예술인으로 선정돼 '엑설런스 2000'상을 받을 만큼 일찌감치 차세대 세계정상의 연주자로 손꼽혔다. 이후 91년 세계 3대 음악콩쿠르인 '퀸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은상 수상과 함께 뮌헨, 바르샤바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등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정상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렇듯 '세계 정상급 연주자', '한국을 빛낸 음악가' 등 그를 따라 다니는 화려한 수식어가 빈말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는 천부적인 재능과 부단한 노력으로 음악적 깊이를 더해 서른 중반의 나이에 진정 독보적인 지위를 확보한 연주자다.
지난해말 인생의 또 다른 동반자를 찾은 백씨는 이제 새로운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이제 막 한달을 넘긴 새댁인 그는 "같은 음악가로서 밀어주고 도와주는 남편을 만났기에 앞으로의 음악활동이 더 든든하고 편할 것 같다"는 말로 결혼소감을 대신했다. 커티스음대 출신 비올리스트인 남편 최은식(34.서울대 전임강사)씨는 10년 이상 알고 지내온 친구 사이. 백씨는 "결혼이라는 울타리가 있어서 기댈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어 더욱 더 음악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이런 울타리를 찾기까지 백씨의 고심이 컸다. 전문 연주자와 교수의 갈림길. 95년 서울대 조교수로 부임한 그는 얼마되지 않아 가장 자신있고 혈기 왕성한 나이에 모험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전문 연주자를 선언했다.
"시간에 쫓기는 생활이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건성건성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기 싫었고, 학생지도에 전력투구하다보니 자신의 에너지 소모가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심끝에 그는 대학에 휴직계를 냈다. 전국 순회연주회를 통해 음악팬들과 가까이 호흡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어 곧장 국제 피아노 파운데이션의 연구프로그램 장학생으로 선발돼 이탈리아로 떠났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를 계기로 그 동안 많은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는 선뜻 직업연주자의 길로 나서지 못하다 결심한 것이다. 1년 동안 좋은 조건에서 공부에 전념한 그에게는 자신감이 넘쳤다. 연이은 해외연주와 국내 피아니스트로는 최초로 98년 세계굴지의 음반사 EMI와 전속 계약, 화제가 됐다.
그는 강한 소리와 큰 스케일을 가진 연주자다. 음악적인 측면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그는 강한 여성이다. 뉴잉글랜드 음악원 유학시절 인종차별을 뼈저리게 느끼고 오직 실력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며 이를 악물고 피아노에 전념했다. 강한 체력(초등학교 때 경북 신기록을 수립한 수영선수였다)도 그의 음악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같은 강인한 정신과 육체는 그를 전문 연주가와 교수의 길을 병행하도록 만들었다. 나태해지지 않는 자신을 위해 연주도 충실히 하고, 교수로서도 힘닿는 데까지 학생을 도우며 같이 성장하고 성숙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한 것이다. 학교와 주변에서 그를 위해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정신없이 살아온 지난 몇 년을 정리하는 재충전 기간이 필요하다고 고백한 백씨는 "당분간 실내악 위주의 연주활동을 펴면서 연습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요즘 그의 음악이 더욱 성숙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학생시절 음악의 세밀한 부분에 치중하다보니 전체적인 느낌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그는 요즘 구도와 소리에 가장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단련되고 깊은 울림에 주의를 기울이고, 전체적인 곡의 짜임새와 구도 등을 파악해 가장 이해하기 쉽게 음악적인 언어로 연주하는 데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을 공부하는 청소년들에게 많이 읽고, 느끼고, 보고 배우라고 충고했다. 자기가 느끼고 아는 것이 없으면 피아노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음악 언어를 소리로 청중에게 전달하고, 이해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겠느냐고 그는 반문한다.
"이 세상에는 사랑과 헌신, 인내없이는 아무 것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악을 향한 백혜선씨의 열정이 새 천년에 어떻게 전개될지 음악팬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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