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별을 딛고 설움을 넘어…(22)-전 재일 대한부인회 중앙회장 김정자씨

일본 도쿄의 가장 번화가인 신주쿠(新宿)에서 지난 97년 3월 재일동포 1천여명이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재일동포들의 지방참정권 획득을 요구하는 의사 표현이었다.

이날 일본 최대 일간지 아사히(朝日)신문은 '시위 행진은 악대를 선두로 울긋불긋한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성들이 길고 긴 행렬을 이루고 있어 행인의 눈길을 끌었다'고 보도했다.

좀처럼 보기드문 어머니들의 치마저고리 대행진이 그것도 도쿄 중심가에서 행해지자 일본 언론들의 관심을 끈 것이다. 일본 언론은 이들이 재일동포들의 권익을 위해 거리로 나선 대한부인회 소속 회원들로서 강한 응집력을 보였다고 밝혔다.

"재일동포들은 일본에 살고 있으므로 한국에서의 참정권을 행사할 수 없고 일본에서도 세금은 꼬박 내면서 참정권이 없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2, 3세는 한번도 투표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기본권리가 없는 셈이지요"

당시 이 시위를 주도했던 김정자(金定子·62)재일 대한부인회 중앙회장은 지방 참정권 획득운동의 당위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99년 8월부터는 3년동안의 중앙회 회장직을 마치고 현재는 재일 경북도민회 부인부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녀는 이 운동의 성공을 위해 유엔인권위원회에도 직접 찾아갈 예정이다.

도쿄에 있는 삼경그룹을 경영하며 재일 한국인 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한 유재근(兪在根)씨와 결혼 2남1녀를 둔 김회장은 해마다 일가족이 함께 고향인 경북 성주군 성산면을 찾고 있다. 성산면 기산리에는 지금도 많은 친척들이 살고 있어 그동안 마을 전체에 전기, 수도를 개통하고 다리를 놓기도 했다고 밝혔다.

재일 대한부인회는 민단의 여러 산하 단체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중의 하나이다.

재일 대한 부인회는 창립 당시 '가정, 문화, 경제'라는 세가지 단어로 집약되는 목표를 세우고 '우리는 재일한국인의 위대한 어머니, 그리고 현명한 아내가 된다'라는 내용의 3대 강령을 채택했었다.

지난 1947년 처음으로 적은 숫자로 창립된 대한부인회의 회원수가 지금은 일본 전국에 약 20만명으로 46개의 지방본부와 320개의 지부가 있어 어머니 파워를 통해 꾸준히 차별철폐 등 재일동포의 권익찾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재일동포 자녀들의 영주권 문제가 걸린 '91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부회장이었던 그녀는 한일 양국의 각 기관앞으로 보내는 탄원서 형식의 '엽서작전'을 단행했다. 20만 회원들의 활동을 주도한 결과 총 45만장의 엽서가 모였고 이 엽서와 요망서를 지참하고 총리관저로 찾아가 당시 가이후(海部)총리를 만나 뜻을 전하고 91년문제의 해결을 위한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1996년 4월 선거를 통해 제8대 회장으로 취임한 그녀는 전통문화에 대한 민족교육을 통해 조직을 활성화하기 위해 문화교실을 개설했다.

또한 재일동포 젊은이들끼리의 결혼을 권장하기 위한 '젊은이의 만남'이라는 집단 맞선보기 행사를 시작, 지금도 연중행사로 계속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재일동포들의 지방 참정권 획득을 위해서는 전국 7개 지역에서 동시에 궐기대회를 실시하고 의견서가 지방의회에 채택되도록 모든 지자체를 방문, 빠른 채택을 요구했다.

그녀는 회장단을 구성해 당시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김대중, 김종필 총재를 비롯, 김윤환, 김덕룡씨 등 본국 정부·정당 관계 인사들을 차례로 방문하고 참정권 문제를 호소하고 조기 해결을 요청했다.

현재 일본내에 영주 자격을 갖고 있는 외국인에 대해 이 지방참정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일본 각 지방의 움직임을 보면 전국 3천302개 지자체 중에 1천324개의 의회가 참정권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데 찬성하는 의견을 채택, 공감대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김회장은 한글을 잘 알지 못하는 동포 2, 3세들을 위해 1일 한단어를 외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우리말 캘린더'를 수만부나 제작, 전국의 재일동포들의 가정에 배부했다.

"어머니의 역할이 가정과 사회의 전 영역에 필요하듯이 부인회는 어머니파워를 통해 민족문제와 공생사회를 구현하는 모든 활동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김회장은 한일우호 증진활동을 위한 교류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국적에 관계없이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취지의 골수뱅크 캠페인을 통해 일본사회에 공생하는 지역주민으로서 적극적으로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재일 대한부인회 주요 활동 가운데 빠질 수 없는 것이 '전국부인회 연수회'이다. 이는 타국에사는 동포들끼리 상호교류를 통해 조직강화와 부인회 활동을 촉진시킬 목적으로 해마다 2개월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개최된다. 지난해에는 6개 지방에서 2천500여명이 참가해 실시됐다.

그녀는 40여년전 조그만 가게를 열고 열심히 살아온 결과 남편과 함께 한 기업을 일구었고 지금은 전무로서 회사를 경영하며 또한 어머니로서의 삶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다시 동포들을 위해 부인회 중앙회장으로서 1인 3역의 활기찬 활동을 했었다. 이러한 밑거름이 있어 앞으로도 재일동포 사회의 어머니 파워는 부인회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빛을 발할 것이 틀림없다.

朴淳國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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