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학교 상담의 중요성과 과제

현대인들은 '억제의 시대'를 살고 있다. 건강을 위해서 금연, 금주해야 하고, 예쁘게 보이려면 먹고 싶어도 참아야 하며, 체통을 지키느라 본심을 드러내지도 못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남에게 말못할 혼자만의 비밀이나 심리적 외상(外傷)을 지니고 살아간다.

자신의 생각, 감정 또는 행동을 과도하게 억제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크고 작은 병에 걸릴 위험을 방치하는 셈이다. 건강심리학과 임상심리학의 많은 연구들은 털어놓지 못하고 억제해야만 하는 충격적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정신 및 신체건강의 문제가 많음을 일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연구에 의하면 부모가 이혼하여 편모슬하에 있는 아동이 아버지가 사망한 아동보다 질병이 더 많은데 그 이유는 아버지의 사망보다 부모의 이혼 사실을 타인에게 털어놓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성폭행 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이 그런 경험이 없는 여성보다 2배 정도의 병원 입원 기록을 보인 조사 결과 역시 성폭행 사실을 말 못하는 점이 주된 원인으로 지적된다.

미국 댈러스에서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자 미국민의 일부는 평소 반정부 성향이 강했던 댈러스 시민을 비난하였고, 댈러스 시민들은 집단으로 강력한 외상을 겪으며 암살사건을 언급하는 것을 억제했다. 사건 후 5년간 댈러스 시민의 심장병 사망률은 사건 전 4년에 비해서 평균 4% 증가했으며(동기간 중 미국 전체는 3% 감소), 암살 이듬해 자살률은 25% 증가하였다(전국적으로는 1%증가).

상담장면이든 종교적 고백이든 심지어 범죄자가 수사관에게 죄를 자백하든 간에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으면 기분이 후련해지는 이른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뿐만 아니라 해결책을 얻을 수도 있다. 말못할 고민을 안고도 잘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20% 정도는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만성적 고뇌자가 된다. 털어 놓으면 고뇌의 시간은 단축된다.

그러나 털어놓고 싶어도 얘기를 들어 줄 기관이나 사람은 많지 않다. 외상을 어루만져주고 고민을 함께 나눌 진정한 상담자는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나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듯이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상담자로서의 나의 역할도 필요하다. 특히 초중고의 학교상담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며 스트레스 대처능력에 부족한 아동과 청소년들을 1차적으로 접촉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많은 학교에서 아예 상담이 행해지지 않거나 상담교사제와 상담실이 형식적으로 운영되거나 또는 학부모의 자원 상담 정도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다행히 교육부는 작년부터 전문상담교사제도를 도입하고 각 대학에 위탁하여 현직 교사를 상담전문가로 훈련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교육현장에 활착되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상담에 관한 전문적 소양을 충실히 갖추는 것은 물론, 이들의 수업부담을 과감히 줄여서 상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배려해야 한다.

아울러 현직교사에게만 자격을 부여하는 규정을 고쳐 상담관련학문 전공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여 상담전담교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다 많은 학생들이 상담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상담 지식을 갖추는 일에 못지 않게 중요한 점은 상담자로서의 열린 자세를 가지는 일이다. 문화적 전통인지는 몰라도 우리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잘 묻지 않는다. 이는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귀찮아하는 교사의 자세에 기인하기도 한다. 대조적으로 미국의 많은 교수들은 e메일을 통해서 들어온 학생들의 질문과 요청에 답장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남의 고민을 진지하게 경청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민은 가벼워지며 그를 짓누르던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도 있다. 우리 학생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와 장이 더 많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대구가톨릭대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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