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곱씹은 생이별...귀환 걸음 천근만근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산의 한을 완전히 달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해"

헤어진 세월의 두께만큼 굵어진 아내의 손을 잡고 다시 생이별의 아픔을 곱씹은 김창환(84.대구시 달서구 월성동)씨는 짧은 북한 방문이 안겨준 회한에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1.4 후퇴때 헤어진 뒤 50여년만에 찾아온 소중한 만남이었지만 기쁨과 슬픔을 함께 가져다 준 세월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더 늙어 보이는 아내 피현숙(79)씨와 딸 영애(62), 공장에서 오른손 마디가 잘려나간 큰 아들 영근(58)씨를 보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에 만나지는 못했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막내 영민(54)이가 살아 있어 한편으로 기뻤다.

유람선을 타고 대동강을 돌 때 고향 땅 평남 대동군 남권면 남정리가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 왔지만 가슴속에 묻어야만 했다. 아내와의 꿈같은 신혼 생활과 추억이 서린 곳이지만 눈물을 보이기 싫어 애써 외면했다.

세자매를 키우느라 눈물마저 말라 버린 아내와 불편한 몸으로 딸 여섯을 키우느라 고생하는 큰 아들을 보고 북에서 받은 선물까지 그대로 쥐어주고 내려왔다.

李庚達기자 sarang@imaeil.com

부모 기일 제대로 알아

○…"50년 세월이 너무 무상해. 꽃같던 동생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늙어 있었어"

평양에서 꿈에도 그리던 여동생 김정숙(63)씨를 만나고 돌아온 김각식(71.대구시 달성군 다사읍)씨.

"가슴이 미어져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는 김씨는 남동생 김창관(60)씨가 5년전 당뇨병으로 숨을 거뒀다는 여동생의 말을 듣고 '세월을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며 통한의 세월을 원망했다.

김씨는 평양을 떠나면서 여동생 정숙씨에게 받은 유일한 선물인 부모님 사진 1장씩과 조카들의 가족사진을 가슴에 품고 "모쪼록 건강하게 오래만 살아다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고 여동생에게 당부했다.

김씨는 이번 방문에서 당초 남, 여동생의 자녀들을 모두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막상 4일동안 고려호텔에서 여동생 정숙씨만 두차례 만난 것이 너무 아쉬웠다.

"두 동생의 자녀들을 3명정도로 생각하고 선물을 준비했는데 여동생이 6남매, 남동생이 4남매여서 생면부지의 조카들에게 일일이 선물을 전하지 못해 미안했다"고 김씨는 말했다.

김씨는 그나마 해방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11년전 숨진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이 모두 고향인 함경남도 북청군에 함께 묻혀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겼다. 여동생 가족과 남동생의 자녀들이 모두 고향땅을 지키고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김씨는 "부모님과 남동생의 기일을 알았으니 제사라도 제대로 지내야겠다"며 "고향땅을 밟아 부모님 산소를 찾아보고 조카들을 만날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울먹였다.

金炳九기자 kbg@imaeil.com

꿈같은 순간 사진 찍어

○…"가슴속에 사무친 한을 조금이라도 풀게 되어 더 없이 기쁘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아"

50년의 긴 기다림끝에 짧은 평양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최성록(78.대구시 서구 비산1동)씨는 흥분과 회한의 감정을 가누지 못했다.

50년 12월, 핏덩이같은 자식과 처를 남겨두고 고향을 떠나온 것이 평생 한으로 응어리진 최씨는 이번 상봉에서 곱던 얼굴에 주름만 깊게 팬 아내 유봉녀(75)씨와 훌쩍 커버려 같이 늙어가는 딸 춘화(55), 영희(53)씨의 모습을 보고 죄책감을 떨칠 수 없었다.

살아 있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당시 생후 1개월의 아들은 죽고 없고, 꿈에도 잊지 못했던 어머니가 지난 77년 아들을 그리며 돌아가셨다는 아내의 말앞에는 속절없이 눈물만 쏟아야 했다.

재가후에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 아내가 한없이 고마워 결혼때 주지 못했던 금반지를 끼워주면서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해야 했다.

최씨는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꿈같은 순간들을 사진기로 소중히 담아왔다.

자신의 사진을 가족들에게 쥐어주며 건강하게 살아서 꼭 다시 만나자는 기약없는 약속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떼야 했던 최씨. 귀환한 후에는 북쪽 손자들의 재롱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북녘 하늘을 보는 게 일과로 남았다.

李庚達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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