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감동적이었다. 그 구구절절 애절하고 한스럽던 상봉자들의 대화 앞에 우리는 가장 인간답게 그리고 각본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것은 조절되지 않는 홍수처럼 숱한 사람들의 가슴에 범람해대며 민족의 동질성을 '정서적'으로 묶는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예컨대 눈물이 앞을 가리던 며칠동안 '의료대란'에서 흘렸던 국민들의 또 다른 고통의 눈물가닥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밀려나 잊혀졌다. 우리는 이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그만큼 그 눈물은'현실'의 발 밑을 어둡고 흐리게 만드는 연막탄 역할도 했던 것이다.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 드라마는 막을 내리지 않고 계속될 전망이지만, 맑은 눈과 서늘한 머리 대신 다시 눈물이 현실의 발 밑을 가릴 지 걱정이 앞서기만 한다.
상봉의 이벤트는 외상도 공짜도 아니었다. 엄연히 현금 결제로서 있게 됐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이벤트들이 진정 통일을 향한 작은 발걸음이라면 이제부터는 감정(感情)에 호소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태를 감정(鑑定)하고 꼼꼼히 계산하는 눈을 기르면서 차근히 풀어가야 한다.
지난 20일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8·15 이산가족 상봉이 드러낸 문제점에 대해서, 남북이'합의'하여 성급하지 않게'차분히'그리고 상호'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고려사항을 밝혔다. 이것은 이산가족 상봉의 해법이 남북의 체제 차이 등으로 신중해야 할 사안임을 언급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제부터 여론몰이에 급급하거나 일의 선후, 본말 그리고 경중을 가리는데 둔감해선 안된다. 무엇보다도 주요 현안 타결을 위한 저비용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안정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냄비처럼 끓어올라 야단법석을 떨다가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과거 정권이 써먹던 고전적이고도 유치한 수법이 통할 리 없다. 민족적·동포적 운운하며 사랑(愛)이란 여린 감정과 심정을 소정의 목적을 위해 금광처럼 마구 파대다가 어느 날 폐광을 만들고, 잊을만 하면 다시 그것을 굴착하는 식이어선 안된다는 말이다.
분명 남북한 이산가족의 상봉 이벤트는 그 무엇(?)을 위해 시급히 추진되는 깜짝 쇼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지속될 남북 이산가족 상봉도 통일 예행연습이라는 총합적 안목 속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된다는 큰 믿음의 한 증거여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수시로 범람하는 눈물의 홍수를 조절하는 댐 역할을 해낼 것이다. 잠시 눈물이 마른 우리들의 머리 속에 남북한의 실상이 어떻고 우리의 소원인 통일이 어떤 방식이며, 또한 그것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차근차근 준비해야 하며, 되고 안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하나 하나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국민적 합의를 쌓아가야 한다. 예컨대, 나이든 세대들이 펑펑 눈물을 쏟을 때 별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무관심했던 젊은 세대들에게 어떻게 피부에 와닿도록 통일교육을 해갈까? 상봉 당시 TV에서 여과없이 쏟아지며 국가보안법을 무력하게 만들던 언설들이 과연 우리 주변 도로 곳곳에 버티고 선 반공포스터들과 무모순적이라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비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 송환문제 등이 호혜평등의 원칙에서 진행되고나 있는가? 이처럼 남북한 간에는 아직 눈물띠로선 다 묶어내지 못한 상이한 '관(觀)'과 '념(念)'들이 엄정한 사실로서 존재하고 있다.
분단의 음지에서 기생한 체제유지용 이념적 잔재들을 정리하지 못한 채 6·15선언 이후 우리 사회가 맞고 있는 정치적·상업적 북한 특수와 신드롬. 하지만 지금 냉면집을 찾거나 노래 몇 소절을 듣는 낱지식으론 북한의 실상에 접할 수 없다. 이제부터 우리는 '화쟁(和諍)'과 '일심(一心)'의 철학으로, 체계적이고 대승적 차원의 통일교육·통일예행연습을 고려할 때다. 감상과 애수로 내몰릴 민족적 정서는 합리적 절차와 합의라는 틀 속에서 이성과 면역력을 되찾아야 한다. 눈물만이 능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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