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진규 이승훈 최승호씨의 신작시집이 도서출판 '세계사' 시인선에서 나란히 나왔다.
정진규씨의 '도둑이 다녀가셨다'와 이승훈씨의 '너라는 햇빛', 최승호씨의 '모래인간'. 60대, 50대, 40대로 세 시인의 연령과 등단 경력은 서로 다르지만 이제까지 발표한 시집 권수만도 각각 10권을 넘겨 만만찮은 시력(詩歷)을 보여주고 있다.
정씨의 '도둑이 다녀가셨다'는 1997년 '알詩'를 펴낸 이후 3년만의 시집. 90년대 들어 '몸詩' '알詩' 연작을 통해 새로운 시세계를 개척해온 시인은 생명현상의 경이로움을 육체와 정신의 충만한 교감으로 표현하여 왔다. 이런 교감의 자세는 이번 시집에서도 중요한 삶의 원동력으로, 시적 상상력의 촉매제로 원숙하게 발휘되고 있다. 시집 말미에는 자기 시세계의 뿌리를 찾아가는 세 편의 산문도 덧붙였다.
이승훈씨의 시집 '너라는 햇빛'은 패러디와 인용의 기법을 고의로 빈번하게 활용한다. 김소월의 '왕십리'나 프로베르의 '고엽'을 패러디하거나 이상의 '봉별기', 카프카의 '시골의사' 등을 인용한 시들이 눈에 띈다. 이같은 기법은 주체성의 흔적과 경계를 지워버리려는 방법론적 시도로 해석되며, 언어와 삶의 새로운 정체성을 탐구하려는 노력을 암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너'로 지칭되는 시적 대상들이 '나를 사랑한다'(97년) 등 이전의 시집에 비해 매우 구체적인 존재의 질감을 갖춰 서술되거나 묘사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손꼽힌다.
한편 최승호씨의 '모래인간'은 '그로테스크'이후 1년만에 내놓은 그의 10번째 시집. 수록된 40여 편의 시는 시집의 주제와 표현형식이 먼저 결정된 후 집중적으로 쓰여진 것으로 대부분 문예지에 발표되지 않은 작품들이다. 행간을 구분하는 시 형식과 산문시의 형식을 혼합, 새로운 표현기교를 시도했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주어진 형상과 기능을 잃어버리고 소멸의 과정을 겪어내는 사물들의 자취를 탐색하면서 인간의 근원적인 삶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있다. -徐琮澈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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