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13회 매일여성 백일장 장원 작품-산문 일반부

새벽에 일어나 고3 딸아이 도시락과 아침을 챙기느라 분주한 시간. 꽁치 통조림이 자글자글 끓으면서 비릿한 내음이 풍기면 인상부터 구기는 딸아이에게 굳이 등푸른 생선을 먹일려는 나는 애원하다시피 딸아일 달랜다. 이렇게 키워봐야 무슨 영화를 볼까랴만. 저 보담 먼저 짜증이 앞서는데 울리는 전화가 뭐이 반가우리. 분명 엄마 전화일걸!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 새로 해드린 틀니가 맞지 않아 덜커덕 거린다며(짜증?) 어리광 섞이신 목소리시다. 가을 배추가 고소해 보여 쌈 한 입 먹으려다 씹지도 못해보고 잇몸이 부었다고 이 바쁜 시간을 칭칭 전화줄로 부여 잡는다.

"알았어. 별거 아닌 일로 이 바쁜 아침에 전화여? 나중에 내 갈께"

탁 전화를 팽개치다시피 했는데 내 딸아이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아이쿠! 내 모습이 거울이구나.

"뭐해! 학교갈 준비 서둘지 않고"꽥 고함으로 아이 입 막고 자리도 모면해 본다. 농사 지으시며 칠남매를 키우셔서 모두 출가시켜 객지로 떠나보내고 기력이 없어 농사도 못진 휑한 가을 마당을 자꾸만 비질로 생채기를 내신다. 바글바글 칠남매가 뛰놀던 마당, 이쪽 한 켠엔 흰콩, 저쪽은 검은 콩, 대문쪽 사랑채 앞엔 붉은 판을 널어 놓으셨는데 한 바탕 난장판을 벌리고 나면 부지깽이든 엄마는 골목 모서리까지 따라오시고 그래도 저녁이면 콩 넣은 밥에 청국장 보글보글 칠남매 볼 미어터지는 것 참으로 보기 좋아하셨다. 이제 저녁이 되어도 찾아드는 식구 없고 아침이 되어도 학교 가라 깨울 자식 없으니 허하신 마음에 그나마 가까이 사는 딸과 얘기라도 하실량 핑계삼아 틀니 타령 하셨을 걸…….

팔순이 가까우신 병든 몸, 아무 쓰잘때기 없으니 어이 영감! 날 좀 데려가시우! 짓무른 눈두덩 훔치고 계시겠지! 분주한 아침을 보내고 세수한 맨 얼굴로 거울 앞에 앉았다.

어이, 이게 누구인가? 내가 내 딸아이만한 시절의 내 엄마가 거울 속에서 의아해 한다. 그렇구나. 20년 후쯤의 내 모습도 지금의 내 엄마와 꼭 닮아 있겠구나. 효도는 커녕 그 마음 헤아려 드리지도 못하는 못난 여식이 많이 원망스러우시리. 서둘러 시장봐서 친정에 간다. 마루 기둥에 등지시고 대문만 바라보시다 반가우시면서도 뭣하러 왔냐고 꾸중이시다.

"엄마! 나 좀 봐! 애들 속 썩이지, 김서방 까탈스럽지, 엄마 밖에 더 있수? 밥맛도 없고 몸살인가 온몸이 아퍼. 엄마가 해주시던 청국장 먹으면 나을라나!"

"어이쿠, 내 새끼. 까칠하구나. 오냐, 오냐. 내 어서 따순밥 지을끼니 아랫목 따순데 배 대고 누웠거라, 잉?"

꾀병으로 아랫목 차지한 40대 중반 딸은 서두시는 어머니 뒷모습에 뭉클 가슴이 북받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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