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어머님 전상서

시골집 다락방을 정리하다가 케케묵은 편지 상자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유난히도 '어머님 전상서'라고 시작되는 편지들이 많았다. 도시에서 학교 다닐 때 시골의 어머님께 보낸 나의 편지들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시작하여 동생에게서 끝나는 길고 긴 안부에 비해, 빨리 돈을 보내달라는 짤막한 용건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추신에는 몇월 몇일까지 보내주지 않으면 도저히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 상자 가득한 편지가 거의 똑같은 안부에 똑같은 용건이었다.

이제 한국에는 이런 편지를 쓰는 아이들도, 아들의 편지를 받는 어머니도 드물다. 잘살아 보기 위해 아들과 딸을 도시로 보내던 어머니들의 꿈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그 때 꿈같이 여기던 자가용이 너무 많아서 나다니지 못할 지경이라고 할머니가 된 어머니가 불평할 정도니까. 그런데 오늘의 어머니들도 똑같이 잘 살아 보기 위해 좋은 학원과 환경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러나 어떤 환경이 오늘의 자식들을 잘 살게 할 수 있을까? 나는 강단에서면 학생들에게 한번씩 물어본다. 자라면서 어머니가 교양서적이나 학술저적을 골똘히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느냐고. 그러면 약 백여명의 학생 가운데 한 두 학생이 손을 들뿐이다. 지난 날에는 잘 살기 위해 책 읽을 시간이 없었지만, 이제 책을 읽지 않는 민족은 잘 살 수 없을 것이다. 20세기는 경제성장과 남성의 시대였지만, 21세기는 문화와 여성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시대의 마지막 아들로서, 이 시대의 어머님들께 간단한 용건의 편지를 보내고 싶다.

"어머님 전상서,

어머님들께서 베스트셀러의 결정권을 맡으신다면, 책 읽는 어머니 옆에서 자란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지겠습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