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권이라는 악마의 속삭임, 자꾸 길가에 가로 누워 쉬고 싶다는 유혹에 휘말린다. 이를 뿌리치지 않으면 승리 할 수 없다" '인간 기관차'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체코의 '에밀 자토페크'가 52년 휄싱키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후 한 말이다. 머리를 왼쪽으로 갸우뚱하게 기울이고 혀를 내미는 특유의 모습으로 거침없이 트랙을 질주했던 체코의 육상영웅이 숨가쁜 호흡을 마침내 멈췄다. 지난 22일 78세를 일기로 이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했다. 런던올림픽(48년) 투창 금메달리스트인 아내 '다나'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 자토페크는 선수시절 18개의 신기록을 세우는 세계육상의 기린아였다. 처음으로 국제적 관심을 끌게된 해는 46년. 체코슬로바키아군의 사병으로 근무하던 때인 이해 프라하에서 베를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동맹군 육상대회 5천m 종목에 참가, 우승했다. 선수생활 6년만에 이룬 쾌거였다. 2년뒤인 런던올림픽 1만m에서 세계신기록(28분54초2)을 수립, 우승해 새별로 떠올랐다. 자토페크의 생애는 체육인 활약과 민주화 투쟁으로해서 전세계민의 애정과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헬싱키올림픽대회는 자토페크의 활약이 전세계를 진동시킨 대회다. 5천m, 1만m, 마라톤 등 3개종목을 석권하는 대기록을 세운다. 올림픽 한 대회에서 육상 장거리 3개부문을 석권한 선수는 자토페크가 유일하고 아직까지 이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1만m종목에서 38번의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위업도 이뤄 20세기 최고 스포츠 영웅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토페크는 이른바 반소(反蘇) '2천어(語) 선언'과 관련으로 해서 스포츠활약 못지않는 관심을 모았다. 지난 68년 '프라하 봄'으로 일컬어지는 체코민주화운동이 군부의 침공으로 좌절될 무렵 이 선언에 가담했다. 현역 대령신분으로 한 민주화 투쟁은 69년 계급, 공산당원 자격까지 박탈당하고 거리의 청소부로 내몰리는 등 인간이하의 박해를 받았다. 90년 체코 민주화운동에 힘입어 숙청된지 20년만에 복권됐다. 최소한의 생활급만 받으며 국민적 영웅으로서의 명성도 말살당한 오욕의 세월 끝에 온 햇빛이었다. 무엇보다 자토페크는 90년 민주화운동때 국민들로부터 조명받을 기회를 스스로 외면한 '영웅행위'로 해서 더욱 존경 받았다고 한다. 50만 시민이 운집한 군중집회에서 "자토페크!"를 연호하며 시민앞에 서기를 바랐으나 끝내 연단에 오르지 않았다. "민주화된 조국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잔잔한 미소로 대답했다던가.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자아도취형 인간이 즐비한 우리의 풍토와는 사뭇 다른 수분(守分 ) 아닌가.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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