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고려대 대학원장에 듣는다
▼전경옥=우리 사회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소리가 높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더욱 심각해지는 양상인데 이 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됐다고 보십니까? 어디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이 위기를 극복할 힘은 있을까요?
▼김우창=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외세 영향하에 있다고들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만큼 자주적인 때도 없었어요. 민주제도.경제.자주, 이러한 점에서 모두 상향추세입니다. 물론 문제도 있지만요. 얼마전 열린 한 통일문제 심포지엄에 외국학자들이 많이 왔는데 김 대통령 칭찬을 많이 하더군요. 반면 국내 학자들은 국내 정치나 통일방안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지요. 제가 볼때 그 차이는 외국학자들은 큰 그림을 보는데 우리는 작은 그림만 본다는 점입니다. 사람 얼굴도 가까이서 보면 온갖 흠이 보이잖아요? 큰 궤적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은 괜찮은 상태라고 자위해도 될 것 같습니다.
역사는 끊임없이 변하는데 똑같은 정책기조를 고집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한 시점이 지나면 이전의 정책이 장애가 될 수도 있어요. 우리 사회의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유연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그 대안으로 무엇보다도 도덕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도덕성은 경제가치로서도 매우 중요한데 한 예로 외환위기 이후 소로우가 한국 중앙은행의 통계를 믿을 수 없다고 했어요. 기본 통계를 믿지 못할 정도라면 우스운 일이지요. 정신 차려야 합니다.
도덕적 자세를 바탕으로한 정확한 상황 파악과 정확한 목표 수립, 그리고 그에따른 합리적 전략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 위기는 이 세가지 원칙을 지키면서 우리가 힘을 합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전경옥=최근 우리 국민들의 삶의 가치관이 통째로 뒤흔들리고 있는 느낌입니다. 온갖 복합적인 가치관, 그릇된 가치관들이 뒤섞여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바람직한 삶의 지향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실이 대접받아야"
▼김우창=이 문제도 결국은 도덕성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기를 돌아보며 자기 삶을 온전히 살려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습니다. 얼마전 국내에서도 상영됐던 일본 영화 '철도원'은 평생을 시골에서 철도원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우리나라라면 아마 퇴출감일 겁니다. 성실하게 자기 삶 사는 사람을 폐기물 취급하는 게 우리 사회예요. 특히 요즘은 신지식인이니 벤처사업가니 그런 사람들만 자꾸 부각시키잖습니까. 꼭대기만 좋아하는 풍조인데 꼭대기도 거죽만 있지 속은 비어있는 경우 많습니다. 세상에 휩쓸리면 자기 삶은 없어요. 도덕적으로 자기를 살피면서 자기 실력안에서 살아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회도 이를 허용해야 해요.
▼전경옥=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도덕은 국민의 일상에서 매일매일의 삶의 올과 결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는데 도덕을 바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김우창=물질적 조건이 먼저 좋아져야 합니다. 물질적 조건에는 필수적 필요와 필요 이상으로 원하는 것 두 가지로 볼 수 있겠는데 배를 채우는 것은 필요조건, 가끔씩 고급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은 필요이상 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원하는 것이 없다면 인생은 삭막해집니다. 그런 사회는 발전이 없어요.
좀바르트는 좋은 것, 사치에 대한 추구가 자본주의의 기본 동력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왕이면 좀 더 잘 살아보자는 욕구를 무시해선 안됩니다. 동시에 필요한 것과 필요한 이상의 것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균형을 맞추는 자세가 요구됩니다.도덕의 기본은 내 능력과 주어진 조건하에서 어떻게 잘 사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또한 도덕은 자기 삶의 균형 뿐만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수 있도록 배려하는, 유연한 공존이 필요합니다.
▼전경옥=지금까지 우리의 정치는 남성적인 힘의 정치로 일관해왔습니다. 21세기에는 여성적인 정치,상생의 정치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국정치의 현실 진단과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한다면?
▼김우창=지금까지 우리 정치에 나타난 힘의 정치는 거꾸로 뒤집어본다면 힘이 없으니까 힘을 요구하는데서 비롯됐습니다. 힘은 다른 사람들을 강제하는 속성때문에 악이기도 합니다. 이는 물질적인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중국의 도시지역에선 한 가정 한 자녀출산이 강제되고 어기면 많은 벌금과 불이익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하나씩만 낳는 풍조예요. 경제적 조건이 향상되니까 강제적 해결이 자주적 해결로 바뀌는거죠.
힘은 필요악이기도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힘은 협동의 힘입니다. 지금까지의 남성적인 힘, 남성적인 정치를 협동적인 힘, 여성적인 정치로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협동적인 힘을 바탕으로 저절로 이루어지게끔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사회를 섬세한 눈으로 보면서 남녀평등, 가정의 가치, 여성의 가치 등을 생각하는 노력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힘은 필요악"
▼전경옥=자연환경이 급속하게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환경의식면에서 많이 향상되긴 했지만 아직도 문제점은 산적해 있습니다. 사람과 자연이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십니까?
▼김우창=장기적으로 인간의 삶을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기술적 발전을 성취한 나라에서 자연손상도 큽니다. 환경을 손상치 않는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캐나다 밴쿠버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동양학 연구소는 목재,철재 등의 재료를 기차역을 뜯어와 지은 건물로 한마디로 리사이클링 건축물이었어요. 특히 화장실은 우리나라 절간같은 구조였는데 스웨덴의 연구기술을 활용, 독특한 공기유통 방식을 통해 수세식 이상으로 깨끗했어요. 물도 절약하고 자연환경에 친화적인 것이기도 하고….
자연은 세대를 넘어 큰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줍니다. 우리도 자기를 넘어 큰 것에 순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복만이 재미는 아니지요. 순응에서 오는 재미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니체는 사람을 병든 동물에 비유했습니다. 큰 세계에서 떠나있기 때문이죠. 자연은 우리의 작음을 깨닫게 해주고 해방감을 줍니다. 정의는 자연의 진리에 입각한 것이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정치.사회적 행동 기반을 자연의 섭리에 두어야할 것입니다.
▼전경옥=인문학은 가치의 학문이며, 인간존재에 대한 근원적 이해를 기초로 합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지적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인문학 위기의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문학은 창의력"
▼김우창=인문학의 고갈 현상은 전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많은 대학들에서 산업경영 개념이 교육의 기본적 원리로 돼가는 경향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개념인데, 보수적 학풍의 영국 옥스포드나 캠브리지대학 같은데서도 수년전부터 경영대학이 생겨났어요. 그간은 비지니스 위주 학문분과를 수용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세계적인 흐름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들처럼 경영마인드가 강조되는 곳은 많지 않을 겁니다. 지난 해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 졸업식에선 총장이 인문학 강화를 중요한 과제로 강조하더군요.
인문학은 장기적 관점에서, 복합적 학문체계 위에서의 창의력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문학 분야는 지원도 미약하고 학생들도 인문학을 멀리하는 풍조입니다. 교육정책 담당자들도 단기적이고 공리적 관점에만 집착해 인문학의 위기는 불가피한 실정입니다.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합니다. 일본 영화 '철도원'의 그 역장처럼 자기 분야를 성실하게 지켜나가는 사람을 존중하는 그런 분위기로 말입니다.
또 대학의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대학에선 경영학,의학 등 직업관련 학과는 대학원 수준에 있습니다. 학부에서는 기초학문 위주로 하고 대학원에서 심화시키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실 문제에 있어서도 회사 인력채용시 전공 명시 모집방식을 없애야 합니다. 대학공부와 취직의 상관관계를 약화시키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수 있겠습니다.
▼전경옥=남북화해 무드가 무르익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내경제도 엉망인데 북한을 왜 돕느냐는 안티적 시각도 있고, 통일을 너무 서두르는 것은 좋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심지어 반통일적 시각도 있습니다. 평소의 통일관을 듣고 싶습니다.
◈"정의보다 평화"
▼김우창=통일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자손만대를 위해 통일은 꼭 해야합니다. 평화통일의 절대적 조건의 하나는 경제입니다. 북한을 열리게 하기 위해서는 경제원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정치가들이 통일의 대가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국내 경제를 돌보며 통일정책을 추진해야겠지요. 먼저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인 후 차차 통일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이나 너그럽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빨갱이니 노동당 2중대니하는 극단적 표현은 삼갑시다. 통일의 전제 조건으로 전쟁도발 책임문제, 국군포로문제 등을 따져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걸 생각해 봅시다. 남아공의 만델라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직후 민주인사들로 '진실과 화해위원회'라는 기구를 설치해 과거 흑인들에 대해 폭정을 휘두른 백인위정자들에게 보복없는 화해정치를 보여줌으로써 국가통합을 달성했습니다. 화해는 곧 용서입니다. 잘못된 것은 밝혀내야 하겠지만 화해의 전제 아래서 해야할 것입니다. 정의보다도 중요한 것은 평화입니다. 정의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평화는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의를 잊지는 말되 평화의 이념 속에 포용되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전경옥=동서갈등에다 요즘은 서울과 지방의 격차도 갈수록 벌어져서 지방에 사는 국민들은 심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역간 불균형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우창=이 문제 역시 도덕성의 차원에서 균형감있게 풀어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정부가 조장하지 말아야 하고 정치인들도 이를 이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언론을 통해 감시하고 심판해야 합니다. 동서의 경제적 불균형은 물론 시정돼야할 문제이지만 지나친 호남편중의 인사도 시정돼야 합니다.
서울집중현상도 그래요. 권력의 지방분산이 관건입니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5년이 됐는데도 권력의 중앙집중은 여전합니다. 일본의 경우만해도 지방도시가 재정도 튼튼하고 여러모로 살기 좋은 곳이 수두룩한 정도인데 우리는 그렇지가 못해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원조방안을 비롯 지방발전을 위한 프로젝트를 계획해야 합니다.
또 지방의 우수한 학생들은 모두다 서울로만 오려고 하는데 교육의 중앙-지방 균등화가 시급합니다. 독일에서는 중앙과 지방 대학간에 서열이 없어요. 쉽게 다른 대학으로 옮겨갈 수도 있고요. 교육투자, 인재등용 측면에서도 중앙과 지방의 격차 없애기 위한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합니다.
돈키호테적 제안인지 모르지만 저는 지방정부가 국제적 비지니스를 할 때 서울만 쳐다보지 말고 지방에서 직접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부산의 국제영화제는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지요.
▼전경옥=오현경.백지영 비디오사건에서도 볼 수 있지만 엿보기 문화같은 저질문화가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습니다. 최근엔 자살사이트같은 엽기적.반인륜적 문화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터넷 대중화의 역기능, 대안이 있을까요?
▼김우창=그들 연예인들은 사생활이라고 하는데 사생활이라면 그런 사진같은 것은 찍지 말아야죠. 이미 그런 사진을 찍었다면 사생활이라 할 수 없습니다. 청소년층에서 그런데 관심이 많은 것은 아무래도 대학 입시위주의 학교교육 아래 재미있는 것이라곤 없으니까 거기에 문제가 있지않을까요? 일본에선 고교 졸업자의 실업률을 걱정하는데 우리사회에선 도무지 관심없는 분야잖아요? 그래서 모두들 대학가려고 하고…. 기성인들도 별다른 출구가 없으니 그런 말초적 자극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겠지요. 인간적 삶, 누구나 살만한 환경여건으로 바뀌어져야 할텐데 말입니다.
국민들에 해악을 미치는 엽기적이고 외설적인 정보는 정부가 통제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여론도 감시해야 하고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터넷 통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른 유익한 정보의 소통이 방해받으면 안되니까요. 무조건 못보게만 하지 말고 뭔가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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