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나도 이제 내묘비명을 쓸 때가 돌아온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면 자네는

아니 벌써?하고 웃을지도 모르지만

다정하고 잔인했던 친구여,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었고

눈 덮인 길에는 핏자국이 찍혀있다.

어저면 나는 오랫동안

이때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살았는지 모른다.

내가 걸어온 시대는 전쟁의 불길과

혁명의 연기로 뒤덮인 세기말의 한때였고,

요행히도 나는 그것을 헤치고

늙은 표범처럼 살아남았다.

수많은 청춘들이 누려야할 기쁨조차

누리지 못한 채 꽃잎처럼 떨어지고

거룩한 분노가 캐터필러에 짓밟혀

무덤으로 실려 갔을 때도 나는

집요한 운명에 발목 잡혀서

마지막 잎새같이 대롱거렸다.

손을 놓아야 한다!

서커스의 소녀가 어는 한 순간

그넷줄을 놓고 날아가듯이

저 미지의 세계로 제비가 되어 날아가며

고독한 포물선을 그려야 한다.

그것이 내 마지막 고별의식이 되기를 바라면서….

-민영 '묘비명'

시인은 1934년 생이니까 실제 나이로 일흔을 앞두고 있다. 이제 이승을 마감하고 또다른 삶을 꾸려야할 시기가 온 것으로 시인은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근래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미리 '유서쓰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오만과 질주로 뒤덮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자는 자기성찰 운동이다. 이 시인도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고 있다. 그 프리즘은 대 사회적이다. 전쟁과 혁명의 열기 속에서 젊은 꽃잎들이 떨어질 때도 집요하게 살아남았던 한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김용락〈시인〉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삼성전자와 SK 등 주요 기업들이 영남권에 대한 312조원의 투자 계획 중 107조원을 올해 집행할 예정이며, 정부는 기업들의 투자 속도감을...
스위스 명품 시계 제조사 오데마 피게가 8월 31일까지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무료 체험형 전시 '시간을 빚다: 르 브라쉬에서 부산...
대구 군위군이 조성 중인 180홀 규모의 파크골프장 1단계 사업이 다음달 준공을 앞두고 있으며, 김진열 군위군수는 시설 점검을 통해 이용자의...
제13호 태풍 돌핀이 9일 중국 저장성 위환 인근 해안에 상륙하면서 상하이의 두 공항에서 약 1384편의 항공편이 취소되었고, 저장성 원저우..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