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자 김교각(金喬覺. 696~794) 스님이 생전 중국에서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았음을 입증하는 '금인'(金印)이 최초로 공개됨으로써 스님의실존 여부를 둘러싼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료가 전하는 김교각 스님의 형상을 본뜬 이 금인은 당나라 황제 숙종(肅宗)이 757년(지덕 2년) 스님의 신앙세계를 높이 받들어 하사한 것으로,당시 스님의 법력을 짐작케 한다는 평가이다.
월간 '선(禪)문화' 최석환 사장은 금인을 보관중인 중국 안휘성(安徽省) 무호(蕪胡)시를 방문, 시 당국자의 입회 아래 무호시정부의 1급 유물인 금인을 확인, 사진과 관련기사를 곧 발간되는 '선문화' 6월호에 실었다.
'선문화'에 따르면 당 숙종이 하사한 금인은 가로, 세로 각 12㎝ 정방형으로 무게는 7근반(4.5㎏)에 달하며 금과 옥으로 만들어졌다. 금인의 등쪽에는사자를 에워싼 구룡(九龍)이 조각돼 있으며 바닥 등에는 '지장이성금인'(地臧利成金印)이라는 여섯자가 전서로 새겨져 있다.
특히 금인의 받침부에는 '당 지덕 2년'이라고 아로새겨져 있어 금인의 하사 시점이 김교각 스님의 생전(입적 37년 전)이었음을 확인하고 있다.김교각 스님의 실존 및 금인 하사시점 여부는 지금까지 학계의 논란거리였다.
또 스님의 얼굴이 조각된 금인의 머리 부위에 뿔이 솟아 있어 중국 사료가 전하는 스님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당시 인물로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중국학자 비관경(費冠卿)은 '구화산(九華山) 창건 화성사기(化城寺記)'에서 "머리에 뼈가 불룩 솟아났다"고 스님을 묘사한 바 있다.
김교각 스님은 중국의 4대 명산 가운데 하나인 구화산에서 지장(地藏)신앙을 일으킨 인물로 알려져 있다. 696년 신라 성덕왕의 왕자로 태어나스물 네 살에 출가, 중국 구화산으로 건너간 뒤 초인적 고행과 법력으로 사람들을 교화했다고 사료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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