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술상무'

중국에서는 공적인 일이나 사적인 일이 술자리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 술 접대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술을 대신 마셔주는 '대음(代飮)'이라는 직업이 생겼다고 한다.

큰 식당에 전속돼 있거나 부자들이 개인 비서처럼 고용해 술자리에 대동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돌아온 술잔은 무조건 비워야 하는 중국의 독특한 음주문화가 만들어낸 이색 직종인 셈이다.

세계 최상위의 음주량을 기록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언제 등장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음'과 비슷한 '술상무'로 통용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술상무'는 중국보다는 융숭하게 중간급 임원으로 불릴 정도나 본인이 직업으로 선택한 '대음'에 비해 그 환경은 훨씬 열악하다.

어쩔 수 없이 맡은 '겸직'이 대부분이며, '풀 코스 접대'를 해야 하는 고된 자리라서 술만 대신 마셔주는 경우와는 다르다.

술을 체질적으로 받는 태음인이라 해도 날이면 날마다 마셔야 할 형편이니 몸이 배겨날 리 없다.

▲앞으로 업무 때문에 술을 많이 마셔 알코올성 간질환에 걸린 것으로 판정되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게 된다.

노동부는 그동안 발병 원인에 대한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힘들어 사실상 산재 보상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던 간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도록 산재보험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 입법 예고를 거쳐 올 하반기부터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개정안에는 독성간염·급성간염·전격성간염·간농양·만성간염·간경변증·원발성간암 등 7종류가 포함돼 있다.

▲기존 간질환이 급속도로 악화된 경우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는 모양이다.

특히 회사 업무로 술을 많이 마셔 간질환을 앓는 '술상무'들에겐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여태 간질환에 대한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이 없어 근로자들이 일일이 소송을 제기해야 했고, 법원에서 그 여부를 판정해온 터여서 '술상무'들이 한시름 놓게 된 건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술꾼들이 희희낙락할 일은 아니다.

개인적인 특성 때문에 상습 과음해 생긴 간질환은 제외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인종과 나이·성별·주변환경 등에 따라 술 종류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체질적으로 타고나거나 중독이 된 경우가 아니면 기쁠 때나 울적하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사교나 사업상 필요에 따라 마시는 게 보통이다.

술은 사람들 사이를 친숙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으며, 적당히 마시면 혈액순환과 신진대사가 원활해지고 치매를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한다.

문제는 너무 많이 마시는 데 있으며, '접대 문화'의 이상현상에 있다.

'술상무'들이 재해 보상을 믿고 천금같은 몸을 더 상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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