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전북 전주 출생.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1978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창작집 '원미동 사람들' '슬픔도 힘이 된다' 등. ▲장편소설 '희망'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천년의 사랑' '모순' 등. ▲유주현 문학상(87), 이상 문학상(92), 현대 문학상(96), 21세기 문학상(99)수상.
어제, 김인수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와는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정확히 23분만에 통화가 끝났다.
물론 23분 중에 내가 말을 한 시간은 넉넉히 잡아도 3분을 채 넘지 않는다.
나머지 20분이란 시간도 평소 그의 실력에 비하면 몹시 짧아서 놀랍다고 해야할 기록이다.
아무 제동도 걸지 않고 가만 놓아두면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마다 않는 것이 김인수씨다.
처음에는 미련하게 그 수다를 다 들어주고 있었는데, 요즘에는 나도 그의 달변을 멈추게 할 말들을 적시에,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끼워 넣는 기술을 습득하였다.
가령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 참, 식사는 하셨어요? 저는 지금 막 나가려는 중인데…. 어쩌지요?"
이렇게 골대에 골을 차 넣듯이 기회를 보아 한 마디만 쓰윽 밀어 넣으면 아무리 지독한 김인수씨라 하더라도 5분 이내에 하던 말을 맺어주는 예절은 지니고 있는 것이다.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거대한 양의 말들을 이렇게 나름대로 막는다고 막아보기는 하지만, 때로는 폭포수 밑에 너무 오래 있어서 머리가 지끈지끈 쑤시는 경우도 잦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나는 잘 참는다.
참는 이유가 있다.
대체적으로 말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데 신명을 바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설명하다 지치면 가끔은 자기 가족에게로 주제를 옮기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대화 속에는 일인칭 명사가 수도 없이 등장한다.
나로서는, 내 기억으로는, 나에게는, 내가 봤을 때는, 나한테는, 내 취향은, 나의 아들은, 나의 남편은….
하지만 김인수씨의 수다는 다르다.
그는 절대로 "나는……"으로 시작되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혹은 남의 이야기만 한다.
그것도 내가 모르는 익명의 사람들이다.
듣는 사람이 괴로워하는 눈치가 보이면 아쉬움이 역력한 눈치이면서도 곧잘 말을 멈춰주기는 한다.
하기야 머지 않은 때에 전날 다 하지 못한 나머지 이야기를 다시 들어줘야 하지만 어쨌든 듣는 수고를 분할해주니 고맙다.
그런 까닭에 나는 여태껏 그의 신상에 대해 자세한 것을 모른다.
우연한 기회에 그와 알게 되어 이런 저런 일로 만나게 된지가 벌써 서너 해가 흘렀는데도 그가 조그만 공업사 비슷한 것을 경영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말하기 좋아하는 만큼이나 남의 일에 상관하기 좋아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남의 일에 상관하기 좋아하는 바로 그 성격이 김인수씨로 하여금 자꾸 나에게 전화를 걸 용건을 만들어 준다.
어제 전화를 한 이유도 말하자면 그런 종류였다.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손재주가 아주 뛰어난 이가 하나 있는데 직장을 잡지 못해 안타깝다는 것, 혹시 일자리 소개를 해줄 수 있냐는 것, 그것이 어제 전화의 요지였다.
짧게 하면 이렇게 간단하지만 김인수씨는 그런 식으로 말을 하지 않는다.
그이의 손재주에 관해, 일자리를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요즘 사회에 대해, 소득이 없어 엉망진창인 그이의 인생역정에 관해, 항목별로 시시콜콜 다 설명을 하지 않고서는 용건을 제대로 전달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 사람이 바로 김인수씨였다.
언젠가는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 정수기 판매를 하고 있는데, 그 물건이야말로 정수기 중의 정수기이며, 그 물을 마시지 않고서는 당장 내일 모레 인간의 몸이 절단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한 의학 정보를 무려 한 시간이 넘도록 전하는 그에게 질려서 집에 정수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전화를 끊기 위해 정수기를 산 적도 있었다.
그 날은 어쩐 일인지 내가 시도하는 제동장치도 먹히지 않았다.
그는 꼭 정수기를 팔아주고야 말겠다는 태도였고, 그렇다면 빨리 승복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었다.
내가 아는 김인수씨한테는 그랬다.
어디 그뿐인가. 한번은 그가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와 내게 점심을 사겠다고 채근을 했다.
이런 저런 일로 나를 많이 귀찮게 한데다가 신세도 여러 번 졌으니 굳이 밥을 사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약속장소에 나타난 그를 보니 동행이 한 사람 있었다.
첫눈에 보아도 일흔 살은 족히 넘겼을 할머니였다.
그는 그저 아는 분이라고만 간단히 소개한 채 시침을 뚝 떼고는 식사시간 내내 다른 이야기만 쏟아냈다.
그렇게 헤어져서 몇 시간이 지난 후, 그가 전화를 해 다짜고짜 그 할머니 인상이 어떠했냐고 물었다.
무슨 영문이지 몰라 어리둥절해있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그 할머니 살림 사는 솜씨가 거의 예술이에요. 반찬 솜씨는 더욱 일품이구요. 살림 맡아줄 분 구해달라는 댁이 많은데 내가 특별히 양 선생님한테 먼저 선을 뵈었어요. 어떠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긴 이야기. 할머니는 아들과 함께 지하철역까지 왔다가 아들을 잃었다고 했다.
잠깐 표를 사온다고 하더니 감감 무소식이었다.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기 두 시간 여, 드디어 김인수씨를 만났다.
남의 일에 상관하기 좋아하는 김인수씨는 겁에 질려있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할머니, 왜 그러세요, 라고 물어준 사람은 두 시간 동안 그가 처음이라고 했다.
아무도 조바심치며 아들을 찾고있는 할머니에게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다.
두 시간 동안 처음이긴 했지만, 그러나 할머니는 그 첫 사람을 제대로 만난 셈이었다.
김인수씨는 할머니에게 아들을 찾아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가 이해하기 힘든 진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 아들은 할머니를 계획적으로 유기한 것이었다.
할머니가 털어놓는 그간의 사정을 들으니 아들만 나무랄 일도 아니었다.
이 부분에서 김인수씨는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을 비판하는데 십 분 이상을 바쳤다.
그 다음에는 노인들의 남아도는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노동정책에 대해 다시 십 분 가량 성토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지만 내 속의 갈등은 그 말이 옳을수록 커져만 갔다.
이제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그렇지만 이번에는 정수기 같은 물건이 아니었다.
게다가 집에 일을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는 흔쾌하게 걱정 말라고, 할머니 같은 사람 구해달라는 집 많다고 그랬다.
설마 그 일이 그리 쉬울까 했지만 얼마 지난 후 할머니에 대해 물으니 역시나 유쾌한 음성으로 "그럼요, 확실하게 해결했어요"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다였으면 여기 이렇게 그의 이야기를 적지도 않았다.
김인수라는 사람, 그는 내가 파악하고 있는 정도를 진작에 훌쩍 벗어난 진실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극히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실제의 그를 마주 대하고서 나는 그만 할 말을 잊어버렸다….
지난 달, 아주 우연한 기회에 나는 처음으로 그가 살고있는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한사코 만류했으나, 전달해줄 부피 큰 물건이 있어서 내가 지나는 길에 들르겠다고 우긴 것이었다.
그가 살고있는 아파트는 스물 여섯 평, 평범한 집이었다.
마침 늦은 저녁이어서 나는 물건만 옮겨주고 급히 나올 생각이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문을 열어주는 할머니가 낯설지 않았다.
지난번 점심을 같이 먹었던 바로 그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당신의 집인 양 편안한 안색으로 나를 맞아들였다.
할머니 뒤로 행동이 부자유스런 소년 하나가 갸웃이 고개를 내밀었다.
김인수씨는 주방에서 물 묻은 손을 닦으며 뒤늦게 나타나서 내 손을 잡아끌었다.
기왕 왔으니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는 그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들어가자 당장 눈에 띄는 것이 예전에 나도 한 대 샀던 그 정수기였다.
고개를 돌리자 주방에 그 정수기가 또 있었다.
그러고 보니 거실에는 내게도 낯익은 물건들이 많았다.
그의 권유가 있을 때마다 사들인, 별로 요긴하지도 않으면서 조잡하기까지 한 잡다한 생활용품들이었다.
차를 내온 김인수씨가 세 개의 방문을 열며 가족들을 불러내기 시작했다.
각 방에서 줄줄이 나오는 식구들을 세어보니 아이들이 넷, 할머니가 둘, 간신히 자기 몸이나 추스르는 할아버지가 또 둘, 그렇게 여덟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이부자리 펴고 누운 채 한밤의 방문객을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중환자가 두 사람 있었다.
내 계산이 정확하다면 그의 가족은 그렇게 그를 포함, 열 한 명이었다.
김인수씨는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일이 내게 소개해주었다.
당연히 소개말은 거침이 없으면서도 유창했는데,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바로 그들 가운데 가장 흔하다는 성인 김씨는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유 역시 말이 많은 김인수씨가 묻기도 전에 줄줄줄 설명해주었다.
" 나처럼 말 많은 남자,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남자를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어요. 그래서 여태 미혼인데, 그런데도 세월이 흐르면 자꾸 한 사람씩 가족이 늘어나요. 이게 내 복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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