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경남 충무시 통영 일대에서는 파리를 〈포리〉라 한다.

〈포리〉. 그러고 보면 파리도 꽤 이쁜 곤충이다.

십이월 아파트 실내에 들어 온 파리를 쫓아도 날아가지 않고, 날아도 이삼십 센티 앞에 웅크리고 앉아 예의 반수면 상태에 빠져든다.

〈포리〉. 여든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이제 할머니 제사 때도 목놓아 통곡하는 일이 없다.

헛도는 병마개처럼 꺽꺽거리는 헛기침이 울음을 대신할 뿐.

〈포리〉. 지난번 묘사 때는 아내와 함께 할머니 산소를 찾아가는 데 아버지는 힘이 부쳐 시동 꺼진 중고차처럼 멈춰 섰다.

아내는 등뒤에서 아버지를 밀어드렸다 가다가 서고. 산중턱 바윗돌에 앉아 눈감고 가쁜 숨 몰아쉬는 아버지의 뺨에 거기까지 따라온 파리가 조용히 날개를 접었다

-이성복 '파리' 부분

파리를 포리라고 부르는 어감 속엔 덜 성가시고 귀엽기까지 하다.

이 시에서 포리와 아버지는 인연처럼 불가분의 영상으로 겹쳐 있다.

이성복 시인은 시가 될 것 같지 않은 미묘한 것들을 연결시켜 삶의 변두리를 중심 부분으로 옮겨 놓는다.

'가족사'의 단면을 '12월의 파리'와 '시동꺼진 아버지'로 대비시키면서 누벨바그의 필름이 그려내는 담담한 우수를 빚고 있다.

권기호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