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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애니깽 농장 재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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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동북부 마나티 지역 사탕수수농장의 연쇄파산과 대량해고 사태로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된 한인들은 배운 기술이라곤 애니깽을 자르는 일밖에 없어 중북부 마탄사스 일대의 애니깽농장에 취업해야 했다.

한인들은 박창운, 김세원의 주선으로 1921년 5월31일 멕시코 유카탄 시절의 노예생활이 떠올라 신물이 나는 애니깽농장으로 눈물을 머금고 이동했다.

이들이 서쪽으로 600㎞ 가량 고난의 행군을 하며 찾아간 곳은 마탄사스에서 동남쪽으로 3~6㎞ 떨어진 핑카 엘 볼로(Finca El Bolo) 농장. 이 곳 애니깽 산업도 대공황 여파로 연쇄불황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한인들은 일감이 적어 파트타임으로 일한데다 중간브로커의 착취로 저임금에 시달리며 빚에 의존해 삶을 꾸려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당시 한인사회 지도자였던 임천택이 38쪽에 걸쳐 남긴 일기 '쿠바이민사'는 "하루 7, 8원밖에 안되는 임금으로 1주일에 고작 2, 3달러를 손에 쥐면 가족생계는커녕 혼자 살기도 빠듯한데 급료는 갈수록 떨어져 탄식하며 방황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억척스럽게 살았으나 가난과 차별대우를 참다못해 1950년대 초까지 멕시코로 되돌아간 사람도 30~50여명에 이른다.

1926년엔 박창운 등이 주동해 브라질 이민을 추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쿠바 아바나에서 만난 이민 2세 박주쌍(71.여)씨는 "아주까리(피마자) 잎으로 찌개를 끓이거나 옥수수빵으로 연명하고, 많은 아이들이 신발을 신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살기 힘들었다는 말을 부모로부터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결국 희망없는 지긋지긋한 농장생활을 벗어나려고 카르데나스와 아바나 등 인근 도시로 인구이동이 이어졌다.

1929년 마탄사스 한인은 120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이는 한인사회가 쿠바 여러 곳으로 팽창하고 한인들이 조국의 독립운동 후원세력이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아바나=강병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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