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승자와 패자는 왜 갈리는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임은 무엇일까? 도박, 스포츠, 연애 등 사람마다 나름의 답변을 하겠지만, '선거'만큼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도 찾기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과정에서 보듯, 선거는 수많은 사람을 울리고 웃기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게임이다.

'파워게임의 법칙(세종서적 펴냄)'은 미국 역대 대통령선거를 중심으로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 벌어진 정치게임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승자와 패자가 갈린 이유는 무엇이며, 승자는 어떤 전략을 채택해 게임에 승리했는가를 저자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저자인 딕 모리스는 '무패 신화'로 유명한 선거꾼이다.

좀더 품위있게 표현한다면 정치전략가, 선거컨설턴트라고 할까. 그는 불가능한 듯 보였던 빌 클린턴의 재선 전략을 지휘해 성공시켰고,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초청으로 방한, 노무현캠프를 한 수 지도하기도 했다.

그런만큼 그가 제시하는 6가지의 선거전략은 매우 설득력을 갖고 있다.

△상대의 이슈를 내 방식으로 선점.해결한다.

△첨예한 이슈로 상대 진영을 분할.제압한다.

△겸손과 설득과 비전으로 조직을 개혁한다.

△첨단기술로 대중의 감성을 휘어잡는다.

△공동체의 위기가 닥치면 적대자까지도 결집시킨다.

△원칙이 아니라 방법을 바꿔서 승리한다.

▲덜 떨어진 듯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똑똑한 엘 고어를 어떻게 이겼는가=지능적인 선거전략의 승리였다.

선거과정에서 고어가 어디를 가든지 간에, 부시가 곧바로 그 뒤를 따라가는 전략을 썼다.

고어가 사회안전망의 허점을 지적하면서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면, 부시는 다소 허술하지만 자신도 그런 정책을 지지한다고 하는 식이었다.

고어는 부시가 매번 민주당 아젠다를 포용하는 척하는 것이 언짢고 걱정된 나머지, 자신의 계획이 부시와 다르다는 점을 장황하게 설명하다 보니 유권자들에게 인상을 구겼다.

TV토론에 나선 고어는 시시콜콜한 설명을 곁들이고 유권자를 교육시키려는 말투를 쓰다가 주제넘고 무례하다는 느낌을 심어줬다.

상대 이슈를 선점한 사례다.

▲엘 고어는 왜 '영원자 2인자'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는가=정치세계의 생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환경문제에 주목한 선구적인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너무 일찍 그것을 제기한 탓에 선거에서는 계속 패배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마음속에 승부에 대한 두려움이 쌓여갔고, 2000년 대선에서는 이런 이슈를 전면적으로 앞세우지 못했다.

당시 차별화를 위해 환경이슈를 내세워도 좋은 시점에서 그는 심약한 마음 때문에 침묵을 지켰다.

승패가 갈린 플로리다는 관광 때문에 환경문제에 가장 민감한 주였다.

▲링컨은 위대한 승부사였다=1860년 미국대통령 선거에 공화당후보로 나선 링컨은 사실 당선되지 못할뻔 했다.

민주당의 아성이 워낙 튼튼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던 노예제에 대해 민주당 후보 더글러스가 '각 주의 자치권에 맡기자'는 모호한 입장을 내놓자, 링컨은 "중립은 비열한 방관행위"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 결과로 링컨에게 표가 쏠릴까 불안해진 민주당의 노예제 반대론자들이 목소리를 높였고, 그 반작용으로 민주당 노예제 찬성론자들은 독자후보를 출마시켰다.

결국 링컨은 40%가 안되는 득표로 운좋게(?) 당선됐다.

첨예한 이슈로 상대를 분열시켜 정복한 사례다.

▲닉슨은 정말 얼굴이 못생겨서 케네디에게 졌을까=닉슨은 1952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수뢰혐의로 궁지에 몰리자, 딸의 강아지까지 TV에 등장시켜 유권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광고로 위기를 모면했다.

닉슨은 정작 이 사건을 겪으면서 자신이 이미지 조작으로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케네디와의 TV토론 당시 메이크업이나 광고전문가의 도움을 철저히 거부했다.

결국 유권자들은 완벽한 준비를 갖춘 젊은 케네디를 택했다.

첨단 미디어로 대중의 감성을 휘어잡은 사례다.

노사모가 인터넷을 이용한 것 처럼.

▲적수가 날뛰도록 방치한 미테랑의 깊은 속내=사회주의자 미테랑은 프랑스대통령 당선직후 대기업의 80%를 국유화했다.

하지만 시장의 역풍으로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총선에서 패배했다.

미테랑은 예상과 달리 초강경 우파인 시라크를 총리로 지명해 동거정부를 구성했다.

시라크는 당연히 국유기업들을 다시 민영화해 미테랑의 성과를 무(無)로 돌렸다.

좀 시간이 지나자 시라크에겐 성과로 내세울 이슈가 사라지고 골치아픈 경제에 대한 책임만 부각됐다.

반면 미테랑은 품위있는 국익외교를 통해 믿음직한 국가원수로 자리매김했다.

미테랑과 시라크의 선거는 해보나마나 였다.

미테랑은 14년동안 장기 집권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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