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부서 복요리집 사장된 박범수씨 부부

박범수(53) 유동숙(47)씨 부부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어부와 시골 식당주인이었다.

고향인 경주 감포가 그곳. 박씨가 물고기를 잡아오면 부인은 요리를 맡아 손님들에게 팔았다.

그러나 식당에서 조금 수입을 올린다 싶으면 배에서 '까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앞에서는 남고 뒤로는 빠지는 장사의 연속.

박씨 부부의 인생 색깔은 2000년 초 달라졌다.

감포 생활을 청산하고 대구 3공단 인근에 복어전문점을 낸 것. 주차장도 제대로 없는 고작 20평 남짓한 가게이지만 수입은 웬만한 제조업체를 능가한다.

월 3천여만원 매출. 음식 장사 특성상 절반 이상은 순수익이다.

광고할 줄을 몰라 홍보 한번 제대로 한 적 없다고 했다.

그 흔한 광고지 한장 돌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손님은 몰려들었고, 손님들끼리 홍보를 해 줬다.

지금은 평균 잡아 석달에 한번꼴로 예약하고 오는 단골만 1천여명에 이른다.

개업 초기부터 만 3년간 가게 쉬는 날을 제외하곤 단 하루도 빼먹지 않은 손님까지 있을 정도. 덕분에 지난해엔 대구시가 관광객을 위해 발간한 유명음식점 소개 책자에까지 실렸다.

최근엔 체인점 개설 문의가 쏟아질 정도.

개업 초기 박씨 부부는 시골 사람답게 우직한 영업 전법에 승부를 걸었다.

첫째도 정직, 둘째도 정직, 그 다음도 정직….

그러면서 처음부터 복어탕 한 그릇에 1만원이라는 가격표를 내걸었다.

박씨가 직접 감포에서 잡아 오는 '밀복'에다 유씨가 직접 시장에서 선택한 재료를 넣어 끓인 만큼 1만원이 적정한 가격이란 판단이 섰다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너무 비싸 파격적인 가격. 그때문에 개업 초기 손님과의 승강이는 다반사였다.

다른 식당은 5, 6천원이면 되는데 이 집은 무슨 고기를 쓰기에 이렇게 비싸냐는 항의가 쏟아졌다.

박씨 부부는 또한번 '정직'으로 대꾸했다.

'다른 집과 맛이 똑같으면 돈을 안받겠다'는 표지판을 식당 벽에 내 건 것. 개업 후 6개월여 동안 같은 승강이가 계속됐지만 음식값을 내지 않고 간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1만원 가치를 한다는 것이었다.

"저희집 음식에 들어간 물고기는 모두 감포에서 잡아온 것입니다.

감포산이 떨어지면 가게 문을 닫아 버립니다.

보름 동안 문을 열지 않은 적도 있었지요. 이런 선택이 없었으면 저희같이 영업수완 없는 시골 사람들이 절대 성공 못했을 겁니다". 주방을 책임진 부인은 손님의 입맛은 절대 속일 수 없다고 했다.

처음엔 복어탕과 복지리 등 단순 메뉴로 시작했지만 요즘은 대구탕에다 참가자미회 등 메뉴가 늘었다.

손님들이 "이것은 어떠냐" "저것도 해 달라"고 요구를 추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아무리 손님 요구가 강해도 한 가지는 들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식당을 키우라는 것. 수십 차례 그런 요구가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게를 키우면 재료가 더 필요하지만, 더 이상은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돈만 노려 검증되지 않은 재료를 쓸 순 없지요. 복어는 고기에서 국물맛이 나오는데 고기 없이 다른 조미료를 넣어 미리 국물을 만들어 둘 순 없다는 얘기입니다". 박씨는 고기 잡는 사람이 고기를 속이면 바다에서 벌을 받는다고도 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아들 영택(25)씨도 이 가게 때문에 요리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전자도 중요한 기술이지만 요리도 값진 기술이란 것이 부부의 신념. 영택씨는 대학 졸업 후 요리를 시작, 일년 만에 복어와 한식 등 관련 요리사 자격증을 모두 땄다.

박씨 부부는 내년쯤 아들을 일본으로 요리 유학 보낼 예정이다.

복어 요리의 본고장에서 제대로 된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것. "저는 시집올 때 생선을 만지지도 못했어요. 그냥 어부의 아내로 살다보니 이곳까지 온 것이지요. 그러나 앞으로는 그래서는 제대로 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맛으로 버텨 왔지만 앞으로는 시각적 맛과 영양까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유씨는 아들이 부모보다 나은 복어 전문가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손님에게 끊임 없이 물어야 합니다.

멀찍이 서서 손님이 어떤 음식에 젓가락을 많이 갖고 가는지 잘 봐야 합니다.

매일매일 결산해서 고치지 않으면 식당은 며칠을 못 버팁니다.

재고가 쌓이는 업종은 생존 기간이 짧다는 사실도 알아야 하고요". 부부는 식당을 하려는 사람을 위해 그런 충고를 남겼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