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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교육섹션 즐거운 Edu-net(어린이 건강캠프)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도시 어린이 30여명이 캠프로 떠났다.

지난달 31일부터 나흘 동안 의성군 교촌 무지개 수련원에서 열린 '건강캠프'. 자신의 몸을 발견하고, 몸의 감각을 일깨우고, 몸이랑 친해진다는 뜻있는 프로그램. 신뢰성 있는 대구녹색소비자연대와 녹색살림생협이 공동주관하는 행사라 부모들은 흔쾌히 보냈으리라.

첫날부터 프로그램은 착실히 진행됐다.

신체검사도 하고, 의사 선생님께 건강검진도 받고, 몸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흔히 먹는 콜라와 음료수, 바나나 우유 등에 대한 당도 테스트도 직접 했다.

250㎎ 콜라 한 병에 각설탕 3, 4개의 당분이 들어 있다는 말에 놀라기도 했다.

오감을 키우는 춤 세라피(therapy) 시간에는 음악에 맞춰 춤도 실컷 췄다.

그러나 정작 어린이들의 올해 여름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만든 건 다른 데 있었다.

프로그램에 포함된 것도, 즉흥적으로 진행된 것도 있었지만 핵심은 바로 '놀이'와 '자유로움'이었다.

첫날 오후 추적놀이. 생경한 농촌 마을에 도시 어린이들이 익숙해지도록 마을 곳곳을 누비는 것이었다.

빙고게임, 퀴즈 등이 섞였지만 어린이들에게는 흙으로 덮인 대지와 풀과 나무 속에서 어둑해질 때까지 마음껏 달린다는 것 자체가 쉽게 누려보지 못한 즐거움이었다.

저녁을 먹고는 모두 나가 논 옆 수로에 미꾸라지 통발을 놓았다.

아침에 꽉 찬 통발을 기대하면서 어린이들은 큰길에 앉거나 누웠다.

흔한 별자리 기행 프로그램처럼 카시오페이아나 오리온 따위의 별자리를 찾을 것도 없이, 아무렇게나 하늘에 떠 있는 별 하나에 자기만의 이름을 붙였다.

소원도 빌었다.

어린이들에겐 프로그램보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더 즐거워 보였다.

대표적인 게 물장난. 폐교를 녹색농촌 체험장으로 꾸민 터라 널찍한 운동장엔 세면대가 있었고, 여러 개의 수도꼭지와 호스가 있었다.

어린이들은 수도꼭지를 끝까지 틀고 까불어대며 서로에게 물을 퍼부어댔다.

물이 넘쳐 운동장에 패여도 나무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할인점에 파는 현대식 대신 대나무를 직접 잘라 만든 물총으로 놀기도 했다.

물이 새 옷이 젖기도 하고, 맘대로 멀리 나가진 않아도, 서로 물총을 쏘며 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한편에서는 전날 배운 리어카에 매달린 어린이들. 수련원 사무국장 송종대씨가 "도시 애들은 리어카 한 대만 있어도 한 나절을 논다"고 할 만 했다.

저녁 밥 먹기는 쉽지 않았다.

수련원에 식당이 있지만 냄비에 직접 밥을 해서 먹게 하자고 송 국장이 고집을 피운 때문. 어린이들은 먼저 산에 올랐다.

장작을 구하기 위해서다.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떨어진 가지를 줍고 하면서 두 번이나 오르내렸다.

벽돌을 쌓고, 씻은 쌀을 담은 냄비를 올리고, 불을 피웠다.

매캐한 연기에 눈을 비비면서, 익어가는 밥 냄새에 침을 꼴깍거리면서 지켜보는 기다림. 그 사이 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 밭에 나가 호박을 따 왔다.

서툰 솜씨로 다듬고 잘라 냄비에 끓였다.

몇 가지 밑반찬을 줬지만, 어린이들은 냄비밥과 된장찌개만으로도 행복해했다.

조성도(대구북부초교3년)군은 "다른 캠프도 몇 번 가봤는데 이런 캠프는 처음"이라고 했다.

어른들이 해 주는 게 별로 없다면서 기억에 남을 일로 나무하고 밥하기, 물총놀이를 스스럼없이 꼽았다.

곁에 있던 다른 어린이들도 "맞아요", "저도요"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이 캠프의 의미는? 프로그램에 있던 몸 알기와 친해지기, 춤 세라피와 당도 테스트 등은 기억이나 하는 걸까? 궁금해 하는데 녹색살림생협 오창식 사무국장이 나섰다.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의 뇌리에는 물총을 쏘고, 불을 피우고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었겠지만, 안전한 한 끼를 위한 과정과 문화를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캠프에서 추구한 바는 이뤘다고 봅니다".

두 딸과 함께 왔다는 정미숙(35.여.의성군)씨도 거들었다.

"프로그램에 기대를 하고 왔는데 막상 보니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애들이 마음껏 뛰노는 모습이 더 좋아 보입니다.

지금껏 방학 캠프에 대한 고민은 어떤 프로그램인지, 어떤 단체에서 하는지, 안전에는 문제 없는지 같은 데만 맞춰왔는데 그건 어른들의 생각일 뿐이네요".

고전적 의미의 캠프는 참여자들이 새로이 구성된 사회를 통해 사회성을 길러가는 데 초점을 맞춘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캠프 생활이 가정과 학교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도로만 진행되면 충분하다.

그러나 요즘의 캠프는 특정한 목적에 너무 매여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취재 후 돌아오는 길에 송종대 국장의 이야기가 내내 맴돌았다.

"캠프는 누가 누구를 위해 마련하는 게 아닙니다.

준비하는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이 하나가 되는 거지요. 놀이 자체에 굶주려 있는 도시 어린이들에겐 프로그램이 없는 캠프가 가장 좋은 캠프일 겁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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