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시인 申瞳集

'목숨은 때묻었나/절반은 흙이 된 빛깔/황폐한 얼굴엔 표정(表情)이 없다//나는 무한히 살고 싶더라/너랑 살아보고 싶더라/살아서 죽음보다 그리운 것이 되고 싶더라/억만광년(億萬光年)의 현암(玄暗)을 거쳐/나의 목숨 안에 와 닿은/한 개의 별빛'(시 '목숨' 앞부분). 원로시인 신동집(申瞳集)은 일찍이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미증유의 비극적 상황과 참혹한 생존의 지도를 그리며 강인한 생명력을 노래했다.

그 이후 감성과 지성의 확실한 구축 위에서 동양적 달관(達觀)과 유현(幽玄)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우람하고 독보적인 시의 탑을 쌓아올렸다.

○1924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1948년 시집 '대낮'을 내면서 등단, 1952년 시집 '서정의 유형(流刑)'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 30여권의 방대한 양의 시집.시전집을 내는 동안 줄곧 대구에서 활동했다.

조병화와 함께 최다작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시류나 유행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줄기차게 자신의 삶과 시를 하나로 아우르는 도정을 걸으면서 '불빛보다는 별빛 같은' 시세계를 펼쳤던 천부적인 시인이었다.

○서울대 정치과 출신인 그는 영남대.계명대 교수, 한국현대시인협회 명예회장 등을 지냈다.

아시아자유문학상, 경북문화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세계시인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수상했으며, 예술원 회원이었다.

20여년의 병석에서도 '송별' '암호' '고독한 자라' '신동집 시전집' '여로' '귀환자' '자전' '누가 묻거든' '백조의 노래' '귀향 이향' '목인의 일기장' 등 13권의 작품집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모래 씹는 아침에도/역겨운 저녁에도/끈기 있게 천사를 기다리는 사람'('천사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으며, 끝내는 '급기야 천사가 오든 말든/오는 듯 가든 말든/끈기 있게 천사를 기다리는 사람'(같은 시)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그의 사생관은 불가적(佛家的)인 상상력에 맥을 대면서 '가고 싶어라. 고향 없는 그 고향으로/뿌리 없는 그 뿌리로'('귀거래')에 이르고 '슬픔 맑은 기쁨이나 빚어 보리라'(같은 시)에 닿기도 했다.

○그가 지난 20일 오랜 세월 천사를 기다리다 자신이 노래했던 그 '귀거래' 속으로 돌아갔다.

향년 79세. 만년에 '종착이 어딘지 함부로 묻지 말라/눈을 감으면/한 줄기 포물선을 그으며/내일로 떨어지는 하나의 별이 있다'('중고차')고 읊었듯이, 여기 남은 우리로서는 이제 물어볼 수도 없지만 이윽고 '하나의 별'이 된 걸까. '바이 없는/청자(靑瓷)의 심연(深淵)'('송신')에서 여전히 송신을 멈추지 않으며 시의 밭을 갈고 있는 것일까. 방대하고 유현하게 빛나는 그의 시세계와 열정적인 생애를 기리며 삼가 천상복(天上福)을 빈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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