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경제관점에서 본 사법부 개혁

대법관 제청을 둘러싼 사법부내의 개혁 요구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다.

전면적인 사법부 개혁의 필요성은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사법부는 오랫동안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사법부가 직면하고 있는 두 가지 문제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판사들은 대법관을 '기수중심'으로 뽑는 관행에 불만을 제기해왔다.

대법관을 같은 기수 법관으로부터 뽑는 기수중심의 인사는 같은 기수 법관 사이에만 경쟁을 허용한다.

그러므로 기수중심의 선발은 다른 기수에 있는 법관들간의 경쟁을 차단한다.

다른 한편, 기수중심 제도는 법원 외부의 경쟁자인 검사와 변호사, 그리고 법학, 사회학, 경제학 등의 전문가를 대법관 후보에서 배제한다.

특히 경제학 전문가의 배제는 법경제학이 매우 중요해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경쟁이란 관점에서 보면, 법원내 판사만에 의한 기수중심의 대법관 제청은 두 집단으로부터의 경쟁을 제거한 것이다.

검사와 변호사를 포함한 법관은 법의 해석과 경쟁적일 수 있는 판례들간의 선택을 놓고 경쟁을 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광의의 지식 시장, 특히 법률 지식시장에서 서로의 아이디어로 경쟁하는 것이다.

헌법재판관을 제외한다면, 대법관이 법률 지식시장의 최고 정점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경쟁을 최대한 허용하는 것이 법의 해석에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대법관은 법률 지식시장에서 기수와 나이를 불문하고 판.검사, 변호사, 법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 등의 구분 없이 그가 가진 철학과 아이디어로 경쟁하게 하여 뽑도록 해야 한다.

보도에 의하면, 소장판사들은 기수중심의 대법관 인사 대신에 소수의 견해를 대표할 수 있는 판사의 대법관 제청을 대안으로 제안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대안은 경쟁이란 관점에서 보면 현행 제도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다.

다양한 전문가의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안의 다른 문제점은 소수의 견해를 대표하기 위하여 선출된 대법관이 항상 소수의 견해를 대변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대법관 선출 방법만이 문제가 되었지만, 사법부에는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개혁 과제가 있다.

사법고시 제도가 그것이다.

이 제도는 법조인을 선발하는 사법부 입장에서는 선발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문제를 효과적으로 막는 장치다.

그러나 사법고시의 장점에 비한다면 단점은 너무 크고 많다.

먼저 사법고시는 판.검사와 변호사를 독점자로 만드는 장치라는 것이다.

독점은 정부가 수여한 특권 또는 특혜로 정의된다.

독점의 정의에 의하면, 고시는 독점에 이르는 수단이고 판.검사와 변호사는 모두 독점자이다.

과거 통행금지 시간에 활보했던 일, 현상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한 느린 판결, 법관과 법원의 고압적인 자세, 전관예우,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조 브로커, 이해할 수 없는 언어, 법조인간의 유착, 권력의 시녀화, 보호감호와 같은 인권유린의 제도화, 높은 변호 비용 등은 모두 독점의 폐해이다.

사법고시는 법대를 고시 교육장으로 만들어 법대 교육을 파행으로 치닫게 해왔다.

고시원에서의 암기 위주의 공부가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이해 관계가 여러 겹으로 꼬인 경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몇 번의 시험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낙태, 동성애자, 성전환, 사이버 테러 등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을 시험으로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겠는가. 더 큰 문제는 고시로 귀중한 젊음이 몇 권의 책 속에 매몰된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사법고시는 암기 위주의 시험에 우수한 인재의 청춘을 낭비케 함으로써 그들의 에너지를 창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는 제도이다.

사법고시와 관련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법대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하여 사법고시를 자격 시험으로 바꾸어야 한다.

일정한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쉽게 법조인 자격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격시험에 의한 법조인 선발은 독점의 폐해를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조인력의 수급을 시장경제에 맡기는 가장 탄력적이고 열린 방법이다.

전용덕(대구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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