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부모 욕심에 동심 상처

대구시 수성구의 한 사립 유치원. '병아리 반'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옆 교실엔 3명의 어린이들이 지도교사도 없이 멍하게 앉아있다.

좀 전까지 '병아리 반'에서 함께 공부했던 이 어린이들은 외부 바이올린 강사가 유치원에 도착하자 교실에서 쫓겨났다.

외부 강사를 유치원이나 어린이 집으로 초빙해 1주에 1,2회 영어 미술 체육 바이올린 국악 수영 등을 배우는 이른바 '특별활동' 시간이다.

영문도 모른 채 교실에서 쫓겨난 이 어린이들은 '5세아 무상교육' 국고지원을 받는 저소득층의 자녀들이다.

"특별활동은 현행 유아교육과정에 포함돼 있지 않아 무상교육 범위에 포함되지 않죠. 초빙강사한테 따로 강사료를 내야하는데 저소득층 학부모 중에는 수업료를 낼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한 유치원 교사의 설명이다.

몇몇 어린이들이 교실에서 쫓겨나야 하는 것은 부모가 과목당 월 2만~4만원에 달하는 초빙강사료를 납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과외수업료를 낼 수 없는 저소득층 어린이들은 중간에 비어버린 시간동안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

교육과정에도 없는 특별활동이 정규 교육과정 중에 종종 이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임강사를 고용하면 정규수업이 끝난 후 가르칠 수 있지만 비용이 비쌉니다". 하루 종일 여러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떠도는 강사의 스케줄에 맞추다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유치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규모가 비교적 영세한 어린이집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학부모 박은미(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씨는 "다섯살 짜리 애한테 영어는 필요없다 싶어 특별활동비를 납부하지 않았는데 교실 밖에서 창문너머로 교실 안을 구경하더라"며 어쩔 수 없이 특별활동비를 냈다고 말한다.

영세한 어린이집의 경우 빈 교실이 없어 복도에서 멍하게 시간을 때워야하는 아이들도 있다.

"학부모들이 요구합니다.

밖에서 따로 음악 발레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 유치원에서 단체로 배우면 비용이 싸거든요". 비교적 지명도가 낮은 사립 유치원은 특별활동을 없앨 경우 경쟁력이 떨어져 원생을 확보하기 어렵다.

부모들의 조기교육 욕심과 일부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생존경쟁이 교육과정에도 없는 특별활동을 강행하는 이유다.

조기 영어 음악 발레 등이 오히려 유아의 두뇌 및 감성발달을 해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은 옆으로 밀쳐두자. 내 아이를 좀 특별하게 키우겠다는 부모의 욕심, 옳든 그르든 원생을 유치하고 보자는 얄팍한 마음이 혜택 받을 수 없는 어린이들 가슴에 상처를 준다.

교실 밖으로 쫓겨난 어린이들은 무슨 죄를 지었나.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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