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신종환(41) 대가야 박물관장

신종환(41) 대가야 박물관장

"이런 몰상식한 일이…. 우째 이럴 수가 있습니까".

지난 7월, 기자와 동행한 신종환(41) 대가야박물관장은 흥분했다.

경남 합천군 야로면 불묏골, 가야시대 유력한 제철 후보지로 꼽히던 곳이었다.

쇠똥과 토기 조각이 여기 저기 나뒹굴었고, 대여섯 곳에 긴 흙고랑이 파헤쳐져 있었다

신 관장은 "파헤쳤으면 원상회복시키고, 유적과 유물이 훼손되지 않도록 제대로 뒤처리를 해야 한다"며 "지표조사든 시굴조사든 이런 식으로 하는 법은 없다.

상식 이하의 행태"라고 꼬집었다.

그는 솔직 담백하고, 직설 화법을 즐겨 쓴다.

그의 강한 직설화법은 고대 유적.유물에 대한 깊은 애착과 관심에서 비롯됐다.

국립청주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있던 지난 94년에는 문화관광부장관 앞으로 '매장문화재 관리방안'이란 건의서를 직접 내기도 했다.

이를 위해 문화재 관련법을 샅샅이 훑었다.

일반인들이 귀중한 골동품을 발견하고도 '보상'이나 '처벌'때문에 신고를 하지 않고, 개발업자들은 발굴비용 때문에 유적을 발견하고도 파괴해버리는 실상이 안타까웠기 때문.

그의 문화재 사랑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북 경산시 와촌면 박사리, 그의 고향 집과 인근 산, 밭도 통일신라시대 절터였다.

어릴 때부터 주변 절터나 무덤에서 도굴된 후 남은 기와, 토기, 청동그릇 등을 주워 모았다.

깨진 항아리 조각을 꼼꼼히 붙인 뒤 갓난아기 다루듯 소중하게 보관하기도 했다.

유물 수집은 그의 취향이 됐다.

누가 장래희망을 물으면 뭔지도 모르면서 '고고학자'였고, 그 꿈은 80년 계명대 사학과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그 해 12월, 군 입대를 앞둔 그의 고민은 '모은 유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였다.

집 마루 밑이나 창고에 둔 유물을 혹 잊어버리거나 '할머니가 처분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할머니는 툭하면 '옛날 물건 보관하면 귀신 끓는다'며 못마땅하게 여기던 터였다.

결국 그는 계명대박물관이 가장 안전한 장소로 판단했고, 그동안 모은 유물을 옮겨보니 라면박스 수 개 분량은 족히 넘었다.

철제 화살촉, 자물쇠, 괭이, 토기, 청동 숟가락, 거울 등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고사리 손을 거쳐 고스란히 그 박물관에 있다.

신 관장이 대학시절 처음으로 맞닥뜨린 것은 경북 고령 지산동 32, 35, 45호 무덤에서 나온 대가야 유물이었다.

77년과 78년 발굴한 유물을 정리하는 게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일이었다.

이후 부산여대박물관, 계명대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 국립대구박물관을 거쳐 공교롭게도 올해 대가야박물관장에 취임했다.

지금 그에게 최대 관심사는 내년 6월 문을 여는 '대가야역사관'을 어떻게 꾸미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이다.

신 관장은 "고령에서 출토된 문화재 전체를 전시대상으로 삼고 이를 모으는데 전력을 쏟고 있다"며 "일반인들이 대가야의 전체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지역민들이 향토문화의 우수성을 일깨우고 문화재 보호에도 앞장설 수 있도록 사업을 벌이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서 '문화재 지킴이'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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