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아내와 딸에게…"

사미인곡, 속미인곡의 작자 송강 정철은 극과 극의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다.

10세 때까지는 남부러울 것 없는 귀족생활을 했다.

큰누이가 인종의 후궁이었고 막내 누이가 월산대군의 손자인 계림군의 부인이었다.

그만큼 왕실과 가까웠다

그러나 을사사화로 그의 인생은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계림군이 처형되고, 형과 아버지는 6년 동안 유배지를 전전한다.

송강은 청년시절을 유배지에서 보내야만 했다.

10년 뒤 문과에 장원급제한 그를 가장 반겨준 이는 명종이다.

어릴 적 친구였기 때문이다.

▲관리로서의 송강은 철두철미한 원칙주의자였다.

이런 일화가 있다.

명종의 4촌형인 경양군이 처갓집 재산을 뺐기 위해 처남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명종은 4촌형을 대신해 용서를 빌고 사건을 맡은 송강에게 선처를 희망했다.

그러나 송강은 왕의 청탁을 무시한 채 경양군 부자를 옥사시켰다.

▲조선 당쟁이 정철에서 비롯됐다고 할 만큼 정치인 송강은 타협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정적에 대해서는 지옥까지 따라가 목을 죌 정도로 집요했다.

그 때문에 사후 100년 간 삭탈관직 상소에 시달렸다.

상소에는 의례 '사악하고 독함은 천고의 간흉'이란 표현이 따라붙었다.

정치세력의 부침에 따라 사후 2차례 삭탈관직되고 2차례 명예 회복되는 파란의 주인공이었다.

생시에도 그는 4차례나 낙향해야 했다.

사미인곡, 속미인곡은 전남 담양으로의 마지막 낙향에서 얻어진 문학적 성과다.

▲조선 정치인들에게 있어 낙향이나 유배는 '정치적 비운'과 '역사적 저술의 기회'라는 양면성을 가졌다.

정치적 고난이 없었다면 뒷날 자신의 족적을 그처럼 뚜렷이 남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서포 김만중, 고산 윤선도, 서애 류성룡 등등이 모두 그랬다.

목민심서, 사씨남정기, 어부사시사, 징비록 등은 그런 산물이다.

근세에도 비슷한 예들이 많다.

네루는 옥중에서 '세계사 편력'을 썼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적 준비기간으로 활용했다.

▲김 전 대통령의 분신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어제 눈물을 흘렸다.

대북 불법 송금과 현대 비자금 150억원을 받은 혐의로 20년이 구형된 재판정에서의 일이다.

구형이 끝나자 박씨는 편지지 8장 분량의 최후진술서를 또박또박 읽었다.

"슬픔에 울고 있는 아내와 딸에게 돌아가게 해주십시오"라는 대목에선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사람의 평범한 가장으로서 그에 대해 깊은 연민을 갖게된다.

그러나 그는 한때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자였다.

그 권력의 무서움과 무게를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회한이 없을 수 없다.

조선 정치인들의 유배문화와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옥중문화. 가족을 찾는 그의 몸짓이 애처롭기만 하다.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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