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허주와 이회창 8년 애증

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선자금수사와 관련, 검찰청사에 출두하던 시각인 15일 오전 10시 50분, 허주(虛舟)는 조용히 눈을 감으면서 이 전 총재와의 인연의 끈을 놓았다.

허주 김윤환(金潤煥) 전 민국당 대표가 이 전 총재와 맺은 지난 8년간은 '이회창 대세론'과 공천탈락 등으로 애증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정치무상의 단면을 드라마틱하게 노출했다.

'대쪽' 이미지 하나로 혈혈단신 정치권에 입문한 이 전 총재를 대권후보로 만들어주었지만 이 전 총재는 대선실패후 16대 총선을 앞두고 '개혁공천'이라는 이름으로 허주를 탈락시켰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5대 총선을 앞두고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이 전 총재를 영입하면서였다.

두 사람은 96년 총선정국에서 당대표(허주)와 선대위원장(이 전총재)으로 첫 호흡을 맞췄다.

대선정국에서 허주는 '영남후보배제론'과 '이회창 대세론'을 접목시키면서 이인제(李仁濟) 의원과 영남출신인 이수성(李壽成)씨 등을 배제하고 이 전 총재를 대권후보로 만드는데 성공, 다시 한번 킹메이커로서 나섰다.

97년 대선패배 이후 2선으로 물러난 이 전 총재가 98년 총재직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허주의 지지때문이었다.

그러나 16대 총선을 앞두고 이 총재는 허주를 버렸다.

구시대의 인물들을 물갈이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허주의 '수렴청정'을 우려한 이 전 총재 측근들의 전략때문이었다.

허주는 "이회창이 이럴수가…배은망덕도 유분수지…"라며 노기를 삭이지 못했지만 한나라당을 탈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인은 공천탈락자와 보수세력규합에 나서, 민주국민당 창당을 통한 총선도전에 나섰지만 참담하게 실패했다.

허주는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타의에 의해 당을 떠나는 날이 오리라고는 단 한순간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이 전 총재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이 전 총재도 후일 허주의 공천탈락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 전 총재는 총재시절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허주의 공천탈락에 대한 질문에 "지금은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허주가 빠진 빈 공간에 대한 아쉬움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또 이 총재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권철현(權哲賢) 의원은 "한일의원연맹 모임 같은 외교무대에서 허주의 부재가 아쉬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허주는 한때 '영남후보론'을 제기하면서 반 이회창전선에 서기도 했으나 결국 대선직전 이 전 총재 지지입장을 밝혔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 후보의 낙선이 허주의 병을 더욱 깊게 했을 것이란 말들이 나오기도 했다.

두 사람은 지난달 28일 4년여만에 만났다.

병석에 있던 고인을 찾아 이 전 총재가 '너그러이 용서해달라'고 사과했지만 허주는 빙그레 웃기만했다고 한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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