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망대-단체장 총선출마 안된다

내년 봄에는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

비자금 정국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에도 각 당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한 자리라도 더 얻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구.경북은 한나라당이 독점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곳으로서 다른 지역보다도 비자금 정국에 따른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비자금 선거에 연루된 정치인들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할 것이지만, 이들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작년 여름에 임기를 막 시작한 현직 단체장들이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발상을 한다면 그것은 지방자치 본질을 부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대구.경북을 막론하고 현직 단체장이 법적으로 주어진 임기를 반도 못 채우고 총선에 출마하려는 일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된다.

이미 대구의 구청장 2명이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를 했다.

물론 자치 단체장이 총선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욕망을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다.

정당한 명분과 여건이 허락하면 그들이 더 큰 정치의 장으로 나아가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아마 단체장 임기 만료가 1년 이하 정도만 남았더라도 단체장의 정치 진출에 대한 지역의 여론이 그리 크게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임기를 시작한 지 이제 1년 반도 안되어 내년 총선에 나갈 준비를 한다면 이는 무엇보다도 단체장을 선출한 지역 구민을 모독하는 행위에 해당된다.

자기의 개인적 정치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주민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자치 행정의 책임을 외면하는 후안무치한 행동이라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다.

그들이 총선에 나가면 지역 주민들은 다시 단체장 선거를 해야 하는데 이 경우 주민들은 "왜, 누구를 위해 선거를 다시 해야 하는가"를 되물으며 심각한 '자치 실망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게다가 단체장 출마로 인한 재선거 비용과 생활 불편 및 선거 부작용도 고스란히 주민들이 치러야 할 몫이다

또한 그들의 출마는 해당 공직사회에 즉각적인 행정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아마도 대다수 공무원들은 조만간 일손을 놓은 채 새 단체장 선출 이후의 처신을 생각할 것이다.

총선에 출마하려는 단체장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현직의 이점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 행정을 이용할 것이며, 이에 따라 행정은 단체장의 정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되어 중앙정치에 진출하는 일이 단체장으로서 성실하게 자치 행정에 임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중앙정치와 당파정치의 후광을 얻기 위해 무리하게 뛰는 단체장의 정파적 기회주의에 혀를 차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특정 정당의 공천을 받은 이유 하나 때문에 쉽게 단체장이 되어 그 직을 두세 번 씩 연임한 사람들이 지역 사회에서 갖는 정치적 기득권은 실로 대단하다.

그러한 정치적 프리미엄을 실컷 맛본 사람들이 이제 단체장 직을 내팽개치고 더 큰 개인적 이익을 위해 총선에 나간다는 것은 지방자치의 기본 정신을 의심하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지방자치와 분권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외치던 사람들이 임기 이후의 처신이 걱정된 나머지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중앙정치에 진출하겠다는 발상은 그들이 사실은 중앙 집권을 그리워하던 사람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한국의 지방자치가 얼마나 허구적으로 운용되고 있는가를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우리의 지방자치가 시간이 갈수록 주민들의 무관심과 냉소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자치단체장 중심의 '지방 통치'로 변질되어 왔으며 그 결과 지방자치의 혜택이 단체장과 특정 정당의 전유물이 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출마를 결심하고 사퇴한 자치단체장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국회의원 되는 것이 중요한 일인가, 아니면 주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가. 작년 여름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주민들에게 약속한 일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신의를 지키며 성실하게 지역구민들에게 끝까지 봉사하는 모습을 보이고 책임있는 자치 행정 지도자의 길을 가는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더 큰 덕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전영평 대구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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