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 데스크-새 해엔 새 눈을 떠 봅시다

지난 토요일, 대구의 한 양로원 지하층 강당에서였습니다.

평균 80세가 넘는다는 이 집 노인들을 위한 위로 잔치가 오후 2시쯤 시작됐습니다.

이런 행사는 어떤 단체에서 마련하는게 보통이라지만, 그날 행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도 영세민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는 한 아줌마가 혼자서 '조직'했다고 합니다.

지인들에게 연락해 동참 의사를 확인한 후 각자에게 역할을 나눠 맡긴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노인 60여명에 행사 참가자도 그 숫자에 버금가는 듯했습니다.

어떤 조그만 식당 아주머니는 떡을 맡았고 경북도청의 어떤 여성 고급 공무원은 돼지고기를 부담했다고 했습니다.

멀리 사는 한 사람은 기타 용도의 비용으로 10만원을 내 놨습니다.

어떤 이들은 품바 공연을 맡고 나섰습니다.

남편이 밴드 연주를 맡고 부인은 상차리기를 책임진 부부도 있었습니다.

십시일반 경로잔치

한 전문 국악인은 제자들과 함께 회심곡 공양으로 할머니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 두 분은 자녀들을 출연시켜 할머니들의 마음을 살갑게 만들어 놓고는 그 사이를 돌며 식사를 거들었습니다.

그 자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고 있는 분, 그런 분들의 뒷바라지에 삶을 바치고 있는 복지사들, 인연에 인연을 이어 참가한 공무원들, 하루 집을 비우고 찾아 온 주부들, 밤일을 마치고 뛰어 온 분들이 동참했습니다.

수십리 산길을 내려 오신 스님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름 난 서예가는 부인을 대신 참석시켰고, 부부 동반한 대구시청의 한 국장급 간부는 뒤풀이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회심곡에 경기민요에 아이들의 재롱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수염이 복스러운 어떤 국악인은 인기있다는 TV 연속극 주제가를 대금으로 풀어 냈습니다.

신나는 트로트에 창이 뒤섞이고 품바 공연까지 이어지더니 결국 지하층은 온통 마당놀이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 사이 사이 여성 봉사자들은 할머니들을 화장실로 업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자리가 부족해 서서까지 손뼉으로 신명을 거들던 많은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저절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복지사는 월남해 이제 80대가 되신 한 어르신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얼마 전 2천300만원 어치의 쌀을 어려운 이웃에 나눠 주고도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한 보안을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연말 어려운 분들께 팥죽을 대접하자는 제안에 어떤 분이 소문 없이 온갖 재료를 부담하고 나섰었다는 얘기도 오갔습니다.

관리비를 못내 전기와 수돗물이 끊겼던 영세민 아파트의 어려운 이웃들 문제를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투자해 해결해 줬다고도 했습니다.

어떤 분은 얼굴 모르는 치과의원 원장을 고마워했습니다.

한 어려운 여고생이 기형적인 치아로 고민한다는 얘기를 널리 알렸다가 누군가의 주선으로 그 원장으로부터 치료 받게 됐다는 것입니다.

한 여성 장애인도 같은 어려움을 겪다 경산의 한 치과 원장 도움으로 문제를 풀었다고 했습니다.

얼굴 기형으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돈이 없어 성형에 엄두를 못내던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한 의사의 몇 년에 걸친 헌신적인 무료 수술로 새 희망을 얻어 가고 있다는 소식도 잇따라 전해졌습니다.

다툼없는 모임에 어느새 눈물

이런 저런 얘기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연히 그리고 스스로 한 인터넷 모임으로 만나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공무원도 있고 교사, 교수도 있습니다.

식당을 하시는 분, 건축사, 의사도 같이 활동합니다.

미혼모를 돌보시는 분, 여성 장애인을 돌보시는 분, 구청과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 주부들, 호스피스 봉사자들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거의가 대구에 터전을 두고 있는 분들이지만, 먼 곳 심지어 대전에서 활동하는 분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들은 한 달에 1천원에서 많게는 하루에 1천원씩, 혹은 한꺼번에 모아 몇만원씩을 냅니다.

어떤 교수는 미국에 장기간 가 있게 됐다며 혹시 잊더라도 꼭 회비를 내도록 일러달라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구경뿐인 저 같은 사람의 눈에서도 어느덧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우연한 일로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 이들의 모임에서는 할퀴고 헐뜯는 얘기라곤 건너 다니는 일이 없습니다.

내년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고 해서 벌써부터 난리에 휘말린 분들께 이 참에 제안해 보고 싶습니다.

차라리 이런 길로 국가와 사회에 봉사해 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진정한 영광과 영혼의 참다운 열림은 국회에서가 아니라 이런 곳에서 얻어지지 않을까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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