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대 피해 영호남 '가슴 열기' 요원

'4.15 총선'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지역 주의 또는 지역할거 정치 구도가 깨어지느냐 여부다.

3김(金)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포스트 3김 시대'의 정국 지형도를 처음 그리는 선거여서 더욱 그렇다.

국회의원 의석의 동서 양분 구도는 군부독재와 이에 항거한 민주화 세력의 대립 구도가 낳은 사생아적 성격이 짙다.

누가 먼저 이를 부추겼느냐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역구도가 한국 정치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데 있다.

▨영.호남이 최대 피해자=동서양분 정치구도의 당사자인 영남과 호남의 현역 정치인은 지역주의의 수혜자이다.

지난 16대 총선에서 공고한 지역주의에 기대 손쉽게 당선됐다.

하지만 영호남 지역 주민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지역구도의 최대 피해자가 되고 있다.

표로 사생결단을 냈으나 정작 돌아온 것은 '피해' 뿐이었다.

지역 현안 해결과 예산 확보 등에서 영남은 여당이 없어서, 호남은 야당이 없어 피해를 입었다.

지역 일은 특정 당이 혼자서 제 맘대로 할 수가 없다.

정당간, 지역간 이해(利害)가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양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지역 현안도 여야가 있어야 제대로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구의 한나라당 김만제(金滿堤), 백승홍(白承弘) 의원 등은 야당 의원으로 총선 전쟁을 앞둔 시점임에도 "여당 몇 석은 지역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자주 토로한다.

야당만의 지역 챙기기의 한계를 고백한 셈이다.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KIST) 설립에 앞장선 한나라당 박종근(朴鍾根) 의원도 과학기술진흥자금을 따내려 열린우리당 이강철 중앙위원에게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의원들의 물갈이가 제대로 안돼 경쟁력 약화로 나타나는 것도 지역주의 탓이 크다는 풀이다.

'공천=당선'인 상태에서 기득권을 가진 의원이 후배에게 길을 터줄 리 만무하고 정치신인이 기성 정치인을 꺾는 일은 더더욱 힘들다.

이는 영호남 의원들의 평균 연령이 전국보다 훨씬 높은 현실이 방증한다.

영남대 김태일 교수는 "지역주의는 합리적 경쟁을 가로막아 능력있는 사람들의 정치 진입을 어렵게 한다"며 "지역주의의 그늘 밑에서 정치, 경제의 부패와 무능력이 자라게 된다"고 진단했다.

▨지역구도 붕괴 조짐=지역 구도가 무너질 징후는 곳곳에서 보이고 들린다.

전북 의원 10명 가운데 4명이 민주당에 남고 6명이 열린우리당으로 옮겨 오면서 '4.15 총선'에서 호남이 광주-전남과 전북으로 갈릴 가능성이 적잖다.

부산-경남에서는 굉음 소리가 나고 있다.

김혁규(金爀奎) 전 경남지사가 지사직을 사퇴하며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열린우리당 후보로 총선에 나설 인물 가운데 공민배 전 창원시장 등 과거 영남의 주류들도 상당하다.

대구-경북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하지만 무소속으로 당선된 박팔용(朴八用) 김천시장과 박인원(朴仁遠) 문경시장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것은 분명 변화다.

특히 지난해 대구 수성을 시의원 재보선에서 무소속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꺾어 '한나라당 불패(不敗) 신화'가 무너지기도 했다.

대구-경북의 열린우리당 후보들도 예전 민주당 후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력의 소유자들이 많다.

게다가 열린우리당 행사에 관료, 상공계, 의료계, 법조계 등 대구.경북 사회의 주류들이 부쩍 잦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지난 총선 때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불완전한 지역구도 타파='지역구도 타파'를 창당 이념으로 내세운 열린우리당이 이번 총선에서 선전해 영남과 호남에서 각각 의석을 낼 가능성은 없지않다.

그러나 영남에서 민주당 인사가 당선되고, 호남에서 한나라당이 의석을 내는 '완전한' 지역구도 타파는 아직 먼 듯하다.

이런 까닭에 '지역구도 타파'를 창당 기치로 내세운 열린우리당의 등장이 '완전한' 지역구도 타파의 길을 원천 봉쇄했다고 문제 삼는 이들도 있다.

윤창중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한 토론회에서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 대결 구도였다면 지역주의에 식상한 유권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해 지역주의가 옅어질 텐데 열린우리당이 '지역구도 타파'를 총선 무기로 꺼내듦으로써 지역주의를 자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총선이 지역주의 대 탈지역주의의 싸움이 되면서 소지역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려 지역 구도가 고착화될 것이란 우려이다.

현재 국회의원의 의석 분포를 기준으로 총선 구도를 보면 수도권과 강원, 제주는 한나라당-열린우리당-민주당간, 충청은 열린우리당-한나라당-자민련간의 3파전으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

또 영남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호남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결국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전국정당이 될 경우 불완전하게나마 지역구도를 타파하는 셈이 된다.

불완전한 지역구도 타파를 징검다리 삼아 정계개편을 통하거나 추후 치러질 지방선거 등 선거에서 완전한 지역구도 타파를 이룰 수도 있다

반대로 열린우리당이 참패할 경우 지역주의를 더욱 공고히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조순형(趙舜衡) 민주당 대표가 대표 취임 직후 "총선에서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에 비해 1석이라도 많으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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